책 소개
“모든 물질은 양자 물질이다. 우리 몸과 빛조차도!”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분야, 응집물질물리학을 소개하는 최초의 교양서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비유로 이해하는 양자 물질의 역사
질량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빛도 물질인가? 자석은 왜 자석인가? 왜 어떤 물질은 전기를 통하고 다른 물질은 그러지 못하는가? 2차원, 1차원 물질도 있는가? 도대체 ‘물질’이란 무엇인가?
《물질의 물리학》은 물리학의 근원적인 질문들을 탐구해가는 과정에서 발견된 그래핀, 초전도체, 양자 홀 물질, 위상 물질 등 기묘한 물질들의 세계를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독창적인 비유로 직관적이고도 자세하게 풀어낸 책이다. 저자인 한정훈 박사는 지도교수 데이비드 사울레스의 201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계기로 여러 차례 대중 강연을 하고 해설을 기고하면서, 제한된 시간과 지면에 답답함을 느껴 좀 더 긴 호흡으로 ‘물질’에 대해 대중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이 책을 구상했다. 그는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에서부터 양자과학 시대의 위상 물질에 이르는 ‘물질’의 역사를 물리학자들의 삶과 당시의 시대 배경, 자신의 경험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현대물리학에서 가장 많은 과학자들이 다루는 대상은 ‘물질’(응집물질물리학)인데 국내 물리학 교양서 대부분은 ‘우주’(천체물리학)와 ‘입자’(입자물리학)가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현대물리학의 최신 흐름에 목말라 했던 독자들에게 이 책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책이 될 것이다.
책 속에서
나는 이론물리학자다. 새로운 물리 이론을 만들어 논문을 쓰는 게 내 일이다. 논문을 왜 쓰는가? 승진, 인정, 명성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남들이란 나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연구자들이다. 대상이 좁을 수밖에 없다. 전 세계를 다 훑어봐도, 내가 반년 동안 온 힘을 기울여 완성한 논문을 읽고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은 겨우 스무 명 남짓하다.
그 동기만을 놓고 보면, 대중을 향한 책 쓰기도 논문 쓰기와 다르지 않다. 나만의 이야기가 있을 때, 그걸 사적인 자리에서 혹은 사회관계망에서 친구들, 동료들과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아쉬움이 남을 때, 심지어 이 말만은 꼭 하고 죽겠다는 각오마저 들게 하는 그런 이야깃거리가 있을 때, ‘저술가’라는 부류의 인간이 탄생한다. 나에게도 인생을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전에 정리해서 남겨놓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물질의 이야기다. _11쪽
거대한 우주에 대한 서사나,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소립자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 없다. 책의 출발점은 일상생활의 뿌리요 뼈대인 원자이고, 그 원자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이다. 이 책은 원자로부터 시작해서 몸집을 키워나간다. 물질의 세계를 향해 나간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발견되는 익숙한 물질보다는 실험실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물질의 세계를 주로 다루었다. 진정한 양자 물질의 세계는 산속에 은둔해 무술 연마에만 몰두하는 무림 고수의 세계와 비슷하다. 실험실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그 무림 세계를 지배하는 굵직한 계파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계파, 즉 양자 물질은 초전도체, 초액체, 양자 홀 물질, 그래핀, 디랙 물질, 위상 물질 등이다. 조금 신기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빛도 물질이다. _13쪽
과학이라는 행위는 어떤 근사한 가설 하나를 줄에 묶어 천장에 매달아놓고, 그 아래 부엌에서 과학자들이 그 가설의 옳고 그름을 검증하려고 이런저런 실험과 계산을 해보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다. 그 가설이 옳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줄은 아래로 내려오고,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가설을 가까이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게 된다. 가설은 이제 ‘정설’ 또는 ‘법칙’으로 불린다. 누군가 오래전에 그 가설 덩이를 천장에 매달아놓은 덕분에 주방에서 비로소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라는 이름의 아주 매력적인 가설을 천장에 매달아준 인물이고, 그의 가설 덩어리를 주방으로, 정설로, 진리의 세계로 끌어내리기 위해 과학자들은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방에서 분주하게 일했다. _23~24쪽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주장만 떼어놓고 본다면 엠페도클레스와 데모크리토스와 플라톤의 답안은 기본적으로 옳다. 비록 그리스인들이 내놓은 ‘답’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볼수록 부정확했지만 그들이 했던 ‘질문’은 아주 적확한 과학적 질문이었다. 현대 과학은 그들이 제시했던 답안 곳곳에 보였던 빈칸을 두리뭉실한 언어 대신 치밀한 수학적 언어로 채워주었다.
플라톤 이후 수천 년에 걸친 세월은 이런 빈칸 채우기에 필요한 과학적 실험 도구와 수학적 언어를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_36~37쪽
과학자가 가장 슬퍼해야 할 때는 그가 했던 일이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무의미할 때이다. 그 결론만 놓고 보면 실패한 이론이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티마이오스》는 최초의 물질 이론을 담은 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보석 같은 요소를 담고 있다. 특히 엄밀한 수학 증명 결과를 자연현상 해석에 적용했다는 점을 가장 매력적인 측면으로 들고 싶다. 《티마이오스》 이후 25세기에 걸쳐 물질의 본질에 대한 탐색이 있었다. 그 결론을 한마디로 내리면 이렇다.
‘모든 물질은 양자 물질이다.' _45쪽
어떤 호텔이 있다. 이름은 파울리 호텔이라고 한다. 이 호텔에는 독특한, 절대 어길 수 없는 규칙이 하나 있다. 어떤 방이든 각 방에는 남자도 한 명, 여자도 한 명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는 규칙이다. 텅 빈 방, 남자 혼자 투숙한 방, 여자 혼자 투숙한 방, 남녀 한 쌍이 투숙한 방은 있지만 남자 둘, 여자 둘이 같은 방에 들어오는 건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세상에 어떤 호텔이, 무슨 이유로 이런 묘한 규칙을 요구할까? _78쪽
파울리 호텔은 바로 물질이다. 물질은 원자를 조합해서 만들어졌고, 각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묶여 있는 원자핵,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도는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모든 물질 속에는 그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 개수에 비례하는 수많은 전자가 있는 셈이다. 각각의 전자는 고유한 방 번호가 붙어 있는 방에 투숙하고 있다. 이 방 번호를 양자역학에서는 양자수라고 부른다. 우리 주변에 보이는 모든 물질은 일종의 파울리 호텔이다. _81쪽
하이젠베르크가 그의 풋내기 학생에게 제시한 주제는 원자 세계의 문제도, 우주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가 내린 화두는 “자석은 왜 자석인가?”와 “왜 금속에서 전류가 흐르는가?” 이 두 문제였다. 이제 막 양자역학이란 멋진 도구가 탄생했고, 유럽의 능력 있는 이론물리학자라면 너도나도 그 과실을 따 먹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던 때인데, 왜 하이젠베르크는 하필 이런 유치한 문제를 두고 고민하면서 학생에게 풀어보라고 시켰을까? _101쪽
그 26년 동안 오너스가 과학적인 성과라고 할 만한 것을 딱히 거두었을 리 만무하다. 그가 했던 일이라고는 그저 세계 최고의 저온 냉장고를 만들기 위해 장비를 설계하고, 설계를 수정하고, 장비를 만들고 관리할 전문 숙련공을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과학자의 인생이나 그의 성취를 너무 낭만적으로 묘사하거나 영웅시하는 일은 물론 경계해야겠지만 이 대목에서 한 번쯤 가슴 뭉클해지는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26년이란 세월을, 딱히 세상에 자랑할 만한 논문 한 편도 없이, 어떻게 버텼을까! 오너스의 집념, 그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도움, 그리고 그의 연구실에서 하는 사업을 꾸준히 지원해주었던 네덜란드라는 국가나 레이던대학교의 제도 등을 상상해보면 놀라움과 부러움과 존경심이 한꺼번에 교차된다. _114쪽
빛이 파동임을 증명했던 맥스웰로부터 슈뢰딩거의 양자역학 방정식 탄생까지, 그 탐구의 시작과 끝만 딱 떼어놓고 보면 천지개벽과도 같은 변화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 중간 과정을 단계별로 뜯어보면 한 알의 도토리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크게 자라 마침내 참나무가 되듯 점진적인 변화의 측면도 분명히 보인다. 양자역학의 핵심 상수를 도입한 플랑크의 논문에는 막상 양자란 단어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고, 빛이 알갱이라고 주장한 아인슈타인의 논문에는 광자photon란 단어가 없다. 대신 ‘양자’는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 정작 ‘광자’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건 1926년 미국의 물리화학자 루이스Gilbert Lewis(1875~1946)였다. (학문적) 선배에게는 매우 조심스러웠던 개념이 다음 세대에선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이를 토대로 다음 단계로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현상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과학이 움직이는 모습이다. _166쪽
우리는 은연중에 물질이라고 하면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은 너비와 길이와 높이가 있는, 3차원적인 어떤 대상이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 현대의 물질 과학은 이런 (일상적인 경험에 근거한) 편견을 20세기 후반 들어서 극복해버렸다. 물질에는 2차원 물질, 1차원 물질도 있다. _211쪽
자석이란 단어가 일반적으로 주는 인상은 놀라움과 경외감보다는 그저 ‘아이들 장난감’에 훨씬 가깝다. 나 역시 양자 물질을 연구하는 물리학자가 되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자석은 양자역학의 본성을 제대로 알아야만 간신히 이해할 수 있는 신비로운 물질이다. _234쪽
차례
추천의 글
머리말
1. 최초의 물질 이론
내 별명은 헬로 /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 부분과 전체 / 현대 물질 이론 / 30년 후
2. 꼬인 원자
헬름홀츠 / 소용돌이 / 소용돌이 원자론 / 위상 원자 이론의 몰락, 부활, 몰락, 그리고…
3. 파울리 호텔
배타적 전자 / 물질의 분류 / 제이만, 로런츠, 파울리 / 전자의 사회학 / 블로흐의 증명
4. 차가워야 양자답다
절대영도의 세계 / 오너스의 냉장고 / 양자다운, 너무나 양자다운 / 초전도체와 힉스 입자 / 두 종류의 액체헬륨 / 과학적 낙수 효과
5. 빛도 물질이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 빛에 대한 공학적 접근: 빛을 나누는 장치 / 빛은 파동이다: 맥스웰의 대발견 / 빛도 입자다! 난로와 전자레인지의 교훈 / 파동의 물질성, 물질의 파동성 / 아인슈타인이 '놓친' 노벨상
6. 양자 홀 물질
전자를 움직이는 힘: 전기력과 자기력 / 맥스웰의 실수, 홀의 발견 / 가장 얇은 금속 / 클리칭의 우연한 발견 / 시애틀, 위상 숫자
7. 그래핀
선배 / 2차원 물질 / 탄소 물질 / 그래핀 발견 / 상대론적 전자계 / 호프스태터 나비 / 놓친 기회, 새로운 기회
8. 양자 자석
입자는 자석이다 / 자석은 정보다 / 위상 자석 / 차원의 반전 / 땅콩 크기만한
9. 위상 물질 시대
샤모니의 추억 / 위상이란 이름 / 제3의 고체 / 양자 스핀 홀 효과 / 짝수 절연체, 홀수 절연체 / 상대론적 금속
꼬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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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모든 물질은 양자 물질이다. 우리 몸과 빛조차도!”
현대물리학의 가장 큰 분야, 응집물질물리학을 소개하는 최초의 교양서!
★★★김민형, 김필립, 염한웅, 이상욱 교수 추천
현대물리학에서 가장 큰 분과인 응집물질물리학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 ‘응집물질’이란 말 그대로 액체나 고체처럼 입자 간 상호작용이 강한 물질로, 반도체, 금속, 자석, 초전도체 등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형태의 물질이다. 한국물리학회 회원 중 약 4분의 1, 미국물리학회 회원 중 약 3분의 1이 응집물질물리학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정도면 ‘물질의 물리학’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 한 권 정도는 있을 법한데, 국내는 물론이고 과학 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를 통틀어도 그런 책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다루는 내용이 무척 넓고 다양해서 양자역학, 전자기학, 통계역학의 법칙들을 두루 이용하기도 하거니와 대중에게 수학을 배제한 채 일상의 언어만으로 물리학 이론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고난도 작업을 이론물리학자 한정훈 박사는 30여 년의 연구 경험과 2016년 지도교수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 계기가 된 대중 강연과 글쓰기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 능숙하게 해낸다.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비유를 곁들여 직관적이면서도 정확하고 자세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물리학의 큰 흐름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만물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물질이란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제기된 궁극의 질문,
불과 백여 년 전 발견된 양자역학과 함께 정답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서 다루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장 ’최초의 물질 이론‘에서는 4원소설로 대표되는 고대 그리스의 물질관과 현대의 양자역학적 물질관을 비교, 소개한다. 2장 ’꼬인 원자‘에서는 양자역학이 탄생하기 직전 유행했던 흥미로운 원자론을 소개하면서, 위상수학적 개념이 물리학 역사에서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어떤 유익한 발전을 가져왔는지 살펴본다. 3장 ’파울리 호텔‘에서는 물질을 호텔에 비유하여 양자역학적으로 물질을 구분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왜 어떤 물질은 전기가 통하고, 어떤 물질은 그러지 못하는지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알 수 있다. 4장 ’차가워야 양자답다‘에서는 저온 물리학의 개척자 카메를링 오너스를 소개한다.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 상태에서 물질의 양자역학적 성질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5장 ’빛도 물질이다‘에서는 빛과 물질은 서로 다른 대상이란 통념이 어떻게 깨졌는지 서술한다. 빛도 물질이라는 자각을 통해 비로소 양자역학의 토대가 놓였다고 할 수 있다. 6장 ’양자 홀 물질‘에서는 대표적인 위상수학적 물질인 양자 홀 물질의 발견과 이론의 발전이 100년이 넘는 기간을 통해 이루어진 과정을 소개한다. 7장 ’그래핀‘에서는 저자의 중학교, 대학교 1년 선배인 세계적인 그래핀 과학자 김필립 교수 이야기를 개인적인 관점에서 다룬다. 물질에는 2차원, 1차원 물질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래핀이 바로 대표적인 2차원 물질이다. 8장 ’양자 자석‘에서는 자석에 대한 양자역학적 이해와 응용의 역사를 다룬다. 자석은 장난감이 아니라 가장 양자역학적인 물질인 동시에 중요한 정보 저장 장치이다. 특히 이 장에는 저자의 연구가 〈네이처〉에 실리기까지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물질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는 무엇을 꿈꾸고 어떻게 연구하는지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9장 ’위상 물질 시대‘에서는 현재 진행 중인 첨단 양자 물질 물리학 분야를 소개한다.
물질을 이루는 원자, 그 원자를 이해하는 유일한 도구 양자역학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독창적인 비유로 이해하는 양자 물질의 역사
현대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양자물리학이 이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비전공자에게 명쾌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저자는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독창적인 비유로 이를 능수능란하게 해낸다. 예를 들면 물질을 호텔에, 물질 속의 전자를 그 호텔의 투숙객에 비유하는 3장 ’파울리 호텔‘이 그렇다. 파울리 호텔에는 설계도(양자역학)도 있고, 운영 방식(배타원리)도 있다. 투숙객(전자)들은 위아래층(전자의 에너지 정도)을 오르내리고, 복도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아래층으로 내려오려면 이 구멍으로 떨어져야 한다. 떨어지면서 쿵, 꽈당 등 다양한 소리(빛)도 낸다. 흥미로운 비유를 곁들여 읽다 보면 양자역학, 분광학, 전자기학 지식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또한 이 책에는 수많은 물리학자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양자 물질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네덜란드의 과학자 카메를링 오너스다. 뉴턴 법칙이 진공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에서 제대로 입증되는 것처럼, 물리학의 원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극한의 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물질의 양자적인 속성은 저온 상태에서 더 잘 드러나는데, 이 문제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오너스가 만든 냉장고다. 오너스가 1882년 29세의 나이로 레이던대학교의 교수로 취임할 때까지 액화시키지 못한 유일한 기체는 헬륨이었는데, 오너스는 이 주제를 파고들어 그로부터 26년 후 액체 헬륨을 얻는 데 성공한다. 어떤 물질이든 절대영도(섭씨 영하 273.15도) 근방까지 낮출 수 있는 ’절대 냉장고‘가 탄생한 것이다. 이 냉장고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양자 물질의 비밀을 풀어내는 데 필요한 단서를 하나씩 제공해주었다.
이렇게 발견된 물질들, 저항이 전혀 없는 금속과 액체, 즉 초전도체와 초액체는 노벨 물리학상의 영광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이미 대형 병원에 설치된 MRI 같은 기계에 널리 쓰이고 있다. 또 저자가 공헌한 분야인 ’스커미온‘을 이용해 기억소자를 만들 수 있다면 지금 정도의 성능을 지닌 기억장치 크기를 땅콩 한 알 정도로 줄일 수도 있다. 이 분야가 품고 있는 이론과 실험, 기초과학의 깊이와 응용의 폭을 생각해보면 왜 ’물질의 물리학‘ 즉 응집물질물리학이 현대물리학에서 가장 큰 분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추천사
위상수학은 모양 공부의 가장 근본적인 분야로, 직관에 가까운 그림들로 시작해서 가장 추상적인 개념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모든 영역에서 깊디깊은 핵심을 꿰뚫고 지나간다. 수학자들조차 어렵게 느끼는 위상수학이 저에너지 물리학, 즉 거의 일상적인 현상에 가까운 물리에 적용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에너지의 모양’은 측정 가능한 현상이고, 이를 이용해서 만들어지는 ‘위상 물질’은 19세기에 정립된 전자기학만큼이나 인류 문명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이 분명하다. 이 분야 전문가인 한정훈 교수의 직관적이면서 자세한 설명으로 가득한 이 책은 독자들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친절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_김민형(워릭대학교 수학과 및 수학대중교육 석좌교수)
양자 물질 연구는 지난 100여 년간 물리학 발전의 최전선에 있어왔다. 현대의 많은 응용 분야가 그 기반을 양자 물질에 두고 있다. 《물질의 물리학》은 양자 물질 연구의 역사, 물질의 기원에 대한 탐구를 최근의 연구 성과까지 포함하여 대중에게 소개하는 역작이다.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없으면 핵심을 이렇게 쉽게 요약해서 전달하기 어렵다. 이 책은 단순히 물리학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자의 삶과 당시의 시대 배경, 저자 개인의 경험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쉽지 않은 개념을 재미있고도 통찰력 있게 접근하도록 만든다.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비유와 예시는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전문 물리학자들에게도 양자 물질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_김필립(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양자물리학의 태동 이래 약 110년 정도가 지난 지금 양자물리학이 인류에게 가져온 변화는 핵폭탄과 핵에너지를 비롯해 실로 막대하다. 양자물리학 없이는 우주의 생성과 진화를 이해할 수 없고, 우리 주변의 모든 전자소자도 작동시킬 수 없다. 특히 최근 양자컴퓨터가 이미 제한적으로 실용화되면서 미국, 유럽, 일본을 중심으로 양자물리학에 대한 새로운 붐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물질의 양자적인 성질을 소개하는 책이 출간되어 정말 반갑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과학 선진국들을 통틀어도 유사한 주제를 다루는 대중서를 찾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더 귀중한 책이다. 일반 독자나 학생들이 현대 물리학의 큰 흐름을 접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_염한웅(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사람들은 흔히 마음의 신비로움에 대해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내게는 물질의 본성이 더욱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까다로운 주제다. 특히 현대 물리학의 근간 이론인 양자물리학이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비전공자에게 명쾌하게 설명하기란 정말 어렵다. 저자는 이런 고난도의 작업을 감탄스러울 정도로 능숙하게 해낸다. 대부분의 독자에게 익숙한 위계적 원자 모형부터 이게 과연 물질인지조차 알쏭달쏭한 위상 물질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직관적이면서도 정확한 서술은, 물질 자체만이 아니라 그 물질로부터 어떻게 마음이 나올 수 있는지를 궁금해할 독자에게 이해의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적극 추천한다! _이상욱(한양대학교 과학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