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방송을 준비하는 가수들의 대기실에 가면 테이블 위에 끼니를 때우기 위한 음식이 놓여 있다. 준비된 음식 중 가장 흔한 것이 바로 ‘김떡순’이다. 글자 그대로 김밥, 떡볶이, 순대를 말하는데, 시간에 쫓기니까 매니저가 재빨리 사와서 틈새 시간에 잽싸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배 아이돌 가수들과 방송을 함께 하면서 그들의 사정을 듣게 되었다.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쪽잠을 자고 스케줄은 예닐곱 개 정도 잡혀 있단다. 식사는 보통 한 끼, 잘 먹는 날엔 두 끼를 먹는단다. 그것도 대기 중이나 이동 중에 차 안에서 김밥이나 햄버거 등으로 때우기 일쑤란다.
“집밥을 못 먹은 지가 6개월이 넘었어요.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가 너무 먹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곧바로 무대에 오르던 후배의 말이 귀에 남았다.
결국 후배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콩나물밥에 버섯찌개, 해물파전 그리고 토종닭에 전복과 낙지를 넣어 삼계탕을 끓였다. 건더기를 먹고 남은 진국에 콩가루를 넣고 만든 칼국수를 끓였고 마지막에는 밥과 잘게 썬 양파와 홍당무를 넣고, 김과 계란, 참기름까지 넣어서 죽을 만들었다.
모두 집밥 한 번을 먹지 못하고 주어진 스케줄 따라 바쁘게 뛰는 나날을 살고 있었다.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니 안쓰럽고도 슬프게 여겨졌다.
외식을 할 때마다 깨닫는 것은 아무리 배부르게 먹었어도 서너 시간이 지나면 배가 쑥 꺼진다는 사실이다. 사 먹는다는 게 그런 건가 싶다.
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한 채 바깥일을 보고 귀가한다고 뭐 특별한 별식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든 직접 만들어야 반찬이 되고 국이든 찌개든 되니 말이다. 피곤한 날 자주 해먹는 건 열무김치 비빔밥이다. 달걀 프라이 하나 보태기도 하는, 그야말로 소찬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렇게 먹은 밥은 대여섯 시간이 지나도 쉽게 배 속에서 꺼지질 않는다.
우린 대체 무얼 먹고 사는 걸까?
소고기를 넉넉하게 사 먹었는데도 금세 배가 꺼지고, 김치에 비벼 먹었는데도 배 속이 오래도록 든든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어떤 ‘기운’을 먹는 게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 집밥 속 엄마의 정성이나 사랑 같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먹는 걸까?
응원이나 격려나 사랑 등 멋진 말이 아니라도 좋다. 식구가 맛있게 잘 먹고, 집밥이 피가 되고 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내 남편, 내 아내, 우리 아이 먹이려고 만드는 그 마음…… 음식에 담긴 그 마음을 먹으면 몸 안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험한 세상을 살아갈 에너지도 되고,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을 더 귀하게 여기게도 된다.
집밥을 못 얻어먹는 후배들 보면 딱하고 속상하다. 나는 집에서 따뜻한 밥을 잘 챙겨 먹는다. 아침마다 속이 편안한 반찬 위주로 남편 도시락을 싸고 점심을 못 먹을 만큼 일정이 바쁜 날은 내 도시락도 챙긴다. 길 모퉁이에 차를 세우고 바깥 풍경을 보며 소풍 나왔다고 생각하며 도시락을 까먹는다.
그 밥이 주는 기운으로 번잡했던 마음과 피로가 싹 사라진다.
집밥의 기운으로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도서소개
그러라 그래| 2021-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