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 친정어머니는
새 옷을 사와서 나에게 입히시며 말씀하셨다.
“너는 너무 마르고 얼굴도 작아서
새 옷을 입혀도 태가 안 난다.”
어쩌다 오빠랑 싸우다 울면
“입이 큰 여자애가 울면 메기 아가리처럼 된다.”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나는 안데르센 동화 속 <미운 오리 새끼>를 떠올리며
‘난 꼭 예뻐져야지.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가 되어야지’
속으로 다짐하며 어머니를 향해 입을 삐죽거렸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나는 교복이 예쁜 학교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엄격한 친정아버지는
“명숙이를 현모양처로 키워야지”라고 하시면서
교풍이 엄하기로 유명한 학교로 진학시키셨다.
문제는 그 학교의 교복이 전혀 예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딸을 현모양처로 만들고 싶은 친정아버지의 뜻은 완고하셨다.
‘난 멋진 직업을 가진 멋진 여자가 되어야 하는데…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변해야 하는데…
그런데 현모양처라니?’
전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하는 데에는 결국 순종했지만
대학을 결정할 때는 많은 고민을 했다.
여자들만 가는 대학의 가사과를 졸업해서
시집가는 수순을 밟으라고 아버지는 강권하셨지만,
나는 아버지를 거듭 설득했다.
아버지 말씀을 이번에는 거역하겠노라고…
하지만 합격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모든 것에 순종하겠다고…
이런 조건을 걸고서 결국
여자들만 가는 학교의 미술대학을 선택했다.
다행히 실패하지 않고 미대에 합격하였다.
(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이지만, 정말 이 대목은 너무 답답합니다)
미술대학 4년 동안 멋도 실컷 부리고
예쁜 것을 찾아 열심히 돌아다녔다.
중고등학교 시절 답답한 교복에 갇혀 살았던 갈증도 풀고,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변신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며 지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밀라노로 떠나 유학 생활까지 마쳤다.
다시 귀국하여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보내던 때,
정신없이 사는 딸이 안쓰러웠는지 친정어머니께서는
가끔 오셔서 내 아들들이자 당신의 손주들을 돌봐주셨다.
그때 했던 어머니 말씀이 기억난다.
“명숙아, 네가 보는 이탈리아 패션지를 보니
패션모델들 입술이 꼭 너를 닮았구나.
옛날 너 어릴 적에 항상 울 때마다 입만 보여서
‘내 딸이 이렇게 못생겨서 어쩌나. 시집은 또 어떻게 보내나’
하고 걱정했는데
이제 보니 내가 너를 최첨단 유행에 맞게 낳아주었네.”
‘아이고! 어머니, 감사합니다.
입 큰 여자도 미인 소리를 들을 걸 미리 아시고
저를 이렇게 낳아주셨네요.
당신의 구박이 저를 지금의 길로 이끌었네요.’
내 자신이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것처럼 여겨졌지만
더 이 악물고 노력했기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으리라.
이 땅의 젊은이들이 그때의 나처럼
천하에 못생겼다고 구박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냅시다!
당신은 미운 오리가 아니라 가능성이 있는 오리이고,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