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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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 장명숙

Chapter 4.#3 :: 제로 웨이스트를 생각하던 날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둘째 아들이

첫 데이트를 하고 귀가한 저녁이였다.

퇴근 뒤 냉장고를 열어보니

유명한 찜닭 집의 포장 백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둘째 아들을 불러 사연을 들어보니

저녁으로 찜닭을 먹었는데 남아서 싸 왔다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더니!

웃음을 참으며 둘째 아들에게 물었다.

“어찌 첫 데이트를 하는 날, 남은 음식을 싸 왔어?”

“엄마도 항상 남은 음식을 싸달라고 하시잖아요.

버리기 아깝고, 돈이나 다름없다고.

깨끗이 포장해 갖고 와 내일 먹으면 된다고.

그래서 싸 왔죠.

첫 데이트라 그런지 밥이 많이 안 먹히더라고요.”

 

나는 다소 걱정되는 마음으로 물었다.

“네 여자친구가 흉보지 않았을까?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해?”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맞는 거죠.

그런 것쯤은 이해해야 오래 만날 수 있는 친구가 되죠.”

너무나 간단명료한 답에 순간 멍해졌다.

 

어쩌다 외식을 하면 나는

음식이 남지 않을 정도만 주문하고,

그래도 음식이 남으면 포장해달라고 부탁한다.

어릴 때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불편해하며 만류하던 둘째 녀석이

첫 데이트 때 나와 똑같은 행동을 했다니,

웃음이 터졌다.

 

새삼 절약과 궁상의 경계선에서 중심을 잡고자 했던

내 삶을 다시 돌아보았다.

나는 알뜰한 할머니와 부모님 밑에서 자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린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음식뿐만 아니라 물건도

쓰임새가 다할 때까지 사용해야 한다고 배웠다.

 

“지구의 한 편에 굶어 죽는 아이들이 있는데,

삼시 세끼 부족함 없이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해하거라.”

식탁 앞에서 어른들이 자주 하시던 말씀을 듣다 보니,

남김없이 먹고 쓰는 습관이 생겼다.

 

또 이탈리아 유학 생활을 하면서

이런 내 습관은 더욱 공고해졌다.

각자의 접시에 먹을 만큼만 덜어서

설거지하기 쉬울 정도로 깨끗이 싹싹 긁어 먹고,

심지어 소스가 접시에 남으면

빵으로 소스를 찍어서 말끔히 접시를 비우는*

이탈리아인들을 보고

동서고금, 음식을 남김없이 먹는 게 미덕이구나,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 우리나라 불교 사찰에서 발우 공양을 할 때, 마지막 남은 김치 조각으로 쌀 한 톨까지 알뜰하게 훑어 먹는 것과 같다. 이렇게 그릇에 남은 소스를 빵으로 깔끔하게 훑어 먹어서 설거지하기 쉽게 접시를 말끔히 비우는 행위를 ‘스카르페따 scarpetta’라고 부른다. ‘스카르페 scarpe’가 ‘신발’을 의미하니 얼마나 재밌는 표현인가?

 

이탈리아 생활에 적응할 때쯤

결혼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신혼부부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당연히 모든 가구나 집기가 새것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구와 식기 등 모든 가재도구가

양가의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들이었다.

 

“빈티지풍이 유행이라 하지만

누가 쓰던 물건인지 모르는 중고 물품을 사는 것보다

의미가 있잖아요. 꼭 필요한 데에만 경비를 쓰고

여윳돈이 생기면 삶을 다양하게 누리는 데 쓰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그들을 보고

검박한 생활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새삼, 둘째 아들이 그날 보여준 행동 때문에

지난날의 기억이 떠오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삶, 깨끗이 먹고 오래 쓰는 삶.

제로 웨이스트 zero waste를 실천하는 삶.

먹고 소비하는 태도만 바뀌어도

내 인생도, 우리 지구도 풍요로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