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시간 이상 걸은 지 15년째.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어김없이 걷기 위해 집 밖을 나선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
신발 끈을 묶을 때마다 콧노래를 자연스레 흥얼거린다.
* 〈나그네설움〉, 조경환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
젊을 때 나는 걷기를 어지간히 싫어해서
걸핏하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택시를 자주 탔는데,
이제는 웬만한 거리는 죄다 걸어 다닌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온 덕일까.
걷는 자세가 반듯하고 등이 곧아서
사람들로부터 좋아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가 매일 걷기 시작한 사연은 이러하다.
15년 전 아침,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오른쪽 골반에서 다리를 따라 발뒤꿈치까지
개미가 기어가듯 가렵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걱정이 엄습해 병원에 갔더니
척추전방전위증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으니,
“태생적인 기형인데 젊어서는 잘 모르다가,
노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증세입니다.
아주 희귀한 케이스는 아니고요.”
정형외과 전문의는 답했다.
나만 겪는 불상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덜 억울했지만
“살짝 어긋난 척추 뼈가 제대로 어긋나면,
하반신 마비까지 올 수 있어요.
척추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할 수도 있고요”라는
경고를 들으니 불안했다.
통증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고,
허리 근육을 강화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전문의는 말했다.
똑바로 걷고,
골반이 틀어지지 않게 바르게 앉고,
무거운 것은 들지 말아야 하고,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지 말고,
다리를 꼬지 말아야 한다는 처방이었다.
가장 절망적인 처방은
장시간 비행기 탑승을 피해야 하는 점이었다.
현업 시절, 장거리 비행을 많이 했지만
대부분 출장이 목적이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야 자유로운 몸이 되어 여행도 자주 다니고,
가볍게 떠나보려 했는데
장시간 비행기 탑승을 되도록 피하라니!
정신줄을 바짝 붙잡고 정말 완치될 수 없는지 물었다.
“매일 꾸준히 걸어보세요.
그러면 허리 근육이 튼튼해져 고통이 줄어들 수 있어요.”
이 대답을 듣고, 그때부터
나의 평생 걷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신발장을 정리했다.
옷맵시를 돋보이게 해주는 하이힐을 모두 꺼내
내 발 사이즈와 똑같은 주변 이들에게 이사시켰다.
높은 구두에 어울리는 스커트도 나누어주었다.
7년간 타던 차도 처분했다.
차를 판 대금을 아프리카 카메룬에 보냈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데 썼다.
그리고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집 근처의 장소를 물색했다.
걸으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는 없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지하철로 이동하며 걷기로 했다.
약속 장소까지 가능한 한 지하철을 타고,
도착역보다 두 역 앞에서 내려서
30분가량을 걷는다.
집으로 갈 때도 같은 방식으로3 0분가량을 걷고,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걷는 습관을 들였다.
이렇게 15년 동안 매일 걸으니 가장 좋은 건,
허리 근육이 튼튼해져 장시간 여행도 할 수 있고
내가 원할 때 밀라노로 날아갈 수도 있게 되었다.
게다가 햇볕을 쬐며 걷는 습관을 들였더니
다리도 튼튼해지고, 자세도 곧아지면서
골다공증 증세도 호전됐다.
더불어 불면증 증세도 나아졌다.
2017년 봄에는 이탈리아 친구들과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여행하며
그곳에서 하루에 여덟 시간씩 걷기도 했다.
역시 내 좌우명이 맞았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징징거리지 않고 앞으로 전진!
어차피 인생은 후진도 반복도 못 하는
일회성 전진만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