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앤 리즌 1호 - 디스토피아
어쩐지 예지의 그 말이 몹시 외롭게 들렸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세계의 멸망이 또 다른 시작과도 같았다. 온전히 둘만 남겨진, 새로운 세계의 시작.
#라임앤리즌
라임 앤 리즌 1호 - 디스토피아 예소연,정수종,약국 저자
  • 2024년 05월 23일
  • 228쪽130X200mm김영사
  • 978-89-349-3382-3
라임 앤 리즌 1호 - 디스토피아
라임 앤 리즌 1호 - 디스토피아 저자 예소연,정수종,약국 2024.05.23
당신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다채로운 방식
라임 앤 리즌(Rhyme & Reason)
인간은 조리(Rhyme)와 논리(Reason)의 세계를 추구한다. 하지만 늘 우리 주변에서는 규칙도, 원인도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인터넷과 같은 가상공간에서는 조리 없는 조리돌림이 성행하고, 현실 세계에서는 논리 없는 무지성의 파국이 매일 펼쳐진다. 
 
우리는 이런 세계를 힘겹게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저건 그냥 아무말이야(There's no rhyme or reason)” 하고 넘어가야 할까. 
 
라임 앤 리즌 시리즈는, 혼란스러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색안경이자 문화적 충분조건으로 ‘장르Genre’를 설정하고, 이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담고자 한다. 소설, 시, 에세이, 희곡, 논픽션, 비평, 만화 등 매호 달리 선별되는 다양한 분야의 저자들이 하나의 장르에 탐닉하여,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독자에게 선사할 것이다. 
P.16-17
“버섯만 먹고 살자는 거군.”
나는 불퉁한 표정으로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예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예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냥, 너와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은 거야. 우리에겐 서로가 전부잖아. 어쩐지 예지의 그 말이 몹시 외롭게 들렸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세계의 멸망이 또 다른 시작과도 같았다. 온전히 둘만 남겨진, 새로운 세계의 시작.
_〈종과 꿈〉
P.74
그렇다면 과연 공기 중에는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있기에 이렇게 지구의 체온을 끓어오르게 하는 것일까. 지금과 같은 미래를 예상이라도 하듯 미국 스크립스 해양연구소(Scripps Institution of Oceanography)의 찰스 데이비드 킬링(Charles David Keeling) 박사는 1958년 하와이 마우나로아 섬 해발 3,000미터 지점에 관측소를 설치하고 공기 중에 있는 탄소량, 즉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아마 많은 분들이 TV뉴스나 신문 같은 미디어에서 1958년 이후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시간에 따라 증가하는 이산화탄소의 농도 그래프를 한 번 정도는 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킬링커브이다.
_〈차가운 불쏘시개를 찾습니다〉
P.178-179
“이런 상황이니 디지털은 전부 무용해졌죠. 남은 인류는 손으로 만져지는 물리적인 것들, 동적 장치로 움직이는 기계의 가치를 깨달았고 미래의 인류에게 이 자산들을 물려주기 위해 하나둘 모아서 보관하기 시작했어요. ‘이게 인류의 유산이고 발자취다.’ 이 건물은 그런 자료와 기록들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박물관 같은 것이고 그 자료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게 내가 하는 일이죠. 따지자면 박물관 관리인 정도 되겠네요.”
“….”
“상상처럼 멋진 미래는 아니죠?”
_〈카메라 옵스큐라〉
Fiction        예소연  《종과 꿈》 / Q&A
Nonfiction  정수종  《차가운 불쏘시개를 찾습니다》 / Q&A
Comics       약국   《카메라 옵스큐라》 / Q&A
작가이미지
저자 예소연
2021년 현대문학 6월호에 소설 <도블>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이 있다. 2023년 문지문학상, 황금드래곤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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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수종
서울대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 및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10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박사후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기후변화모델링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2013년부터는 미국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인공위성 자료를 이용한 전 지구 탄소순환 연구에 대한 업무를 수행했다. 정수종 교수는 한국의 탄소중립 지원을 위한 국가연구개발사업 Korea Carbon Project의 총괄책임자로 다양한 온실가스 연구를 수행하며, 세계적인 국제학술지 <Global Change Biology>의 에디터로도 활동 중이다. 또한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으로서 한국의 기후테크 산업육성을 위해 조직된 녹색중소벤처전문위원회 위원장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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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국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웹툰을 연재했으며, 지은 책으로 《K를 기리며》, 《언럭키 맨션》, 《죽여주는 복수선언》, 《지역의 사생활 99 : 양산 - 키르케고르와 법구경》, 《전야제》, 《시티 라이프》, 《홀리데이 필름 콜라주》, 《그 길로 갈 바엔》(공저) 등이 있다. 청춘들의 흔들리는 삶을 생동감 있는 캐릭터와 펜선으로 표현하여, 독자에게 담백한 위로를 전한다. 고양이 타로와 함께 살고 있다.
디스토피아라는 오래된 질문,
그리고 최후의 인간들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으로서의 재난은 더 이상 장르의 밑천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때로 현실 그 자체이다. 우리는 미래의 묵시록적 재난이 아니라, 항상-이미 지나간 현실의 파국으로서만 디스토피아를 체험한다. 더불어 디스토피아(다크판타지, 좀비물, 생존물, 공포물 등)를 다룬 수많은 영화와 문학, 다큐멘터리, 만화에 이르기까지, 이제 우리는 파국이라는 극적 장치를 무신경하게 받아들이며 소비하는 것은 아닌가?
 
라임 앤 리즌의 첫 번째 주제인 ‘디스토피아’ 편에서는 우리가 과거-현재-미래의 디스토피아적 형상을 다루는 방식을 재조명하려 한다. 이번 호는 주목받는 신예 소설가 예소연의 픽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후변화 연구자인 정수종 교수의 논픽션, 그리고 매력 있는 작품으로 사랑받는 만화가 약국의 작품을 함께 담았다.
 
예소연의 픽션 《종과 꿈》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폭발에서 살아남은 두 인물의 존재론적 대화가 펼쳐지고, 정수종의 논픽션 《차가운 불쏘시개를 찾습니다》는 전 세계적 기후위기의 원인을 차근차근 파헤치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더불어 약국 작가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우리 세계의 황폐함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디스토피아적 형상과, 그런 불확실성의 세계 속에서 움트는 희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같은 장르를 주제로 세 명의 저자가 각각의 생각을 펼쳐놓았지만, 그 생각들은 우연치 않게 하나의 논점을 가리킨다. 최후의 인간. 바로 지금, 우리의 얼굴에 숨겨진 디스토피아의 형상을 관통하면서, 끝내 살아남아 존재하려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전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장르의 미래는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장르가 장르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라임 앤 리즌의 첫 이야기로 살펴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