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보다 곤충과 함께한 시간이 더 많은 어느 곤충학자의 단상
그리고 손톱만 한 작은 짐승의 치열한 생존과 사랑, 놀라운 지혜
나이 마흔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해서 이제는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곤충학자가 된 정부희 박사. 그가 현재 이 자리에 서기까지 겪어왔던 삶의 에피소드와 일상을 꾸려나가면서 떠오른 생각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곤충의 생태와 습성, 지구에서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까지 모두 한데 버무려 맛깔스럽게 풀어낸 에세이. 소녀 같은 순수한 감성과 삶에 대한 푸근한 시선, 저자의 애틋한 곤충 사랑에 탄탄한 과학에 뿌리를 둔 유쾌한 스토리텔링이 더해져 재미와 감동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또한 저자가 곤충을 찾아다니며 직접 찍은 사진들을 곳곳에 수록하여 마치 한편의 곤충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곤충을 좋아하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반길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번식을 위한 곤충의 숨 가쁜 구애와 생명의 탄생, 헌신적인 돌봄에 대해 살펴보고, 2부에서는 생존을 위한 곤충들의 경이롭고 개성 넘치는 삶의 방식을 다루며, 3부에서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곤충들의 치열하고 고단한 삶의 모습을 비춘다. 마지막 4부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곤충의 생존 방식과 나아가 우리가 왜 곤충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다양한 충생을 중심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지만, 모든 장마다 녹아 있는 저자의 소소한 일상과 진솔한 단상은 글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이끌고 인간과 곤충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삶의 지혜를 선사한다.
꽃보다 곤충
독박육아로 인한 우울증과 건강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들과 전국 곳곳을 돌며 4년여간 유적답사를 하다가, 유적지 주변에 피어 있는 야생화들에 눈길을 빼앗기고 급기야 야생화 공부를 시작한 정부희. 그러던 중 식물의 종에 따라 찾아오거나 살아가는 곤충이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무척 궁금하게 여긴 그는 본격적으로 곤충학도의 길로 뛰어든다. 왜 하필 누구나 좋아하는 꽃이 아닌 곤충이었을까? “어느 날 곤충이 운명처럼 제 마음속으로 들어왔다”고 정부희 박사는 고백한다.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자란 그에게 곤충은 공기 같은 존재, 가족과 이웃 같은 존재였다. 늘 곁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였기에 그에겐 곤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전혀 없었다. 그 후 20년 넘게 곤충을 옆에 두고 살아간 정부희 박사는 말한다.
“곤충은 보면 볼수록 오묘하고 신기해요. 1cm도 안 되는 크기의 곤충에도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죠. 휘휘 젓는 더듬이, 똘망똘망한 눈, 뽈뽈뽈 기어다니는 다리, 특히 보석을 빻아 뿌려놓은 듯한 몸 색깔은 정말 예술입니다.”
하지만 늦은 나이, 전업 주부에서 만학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는 것처럼 혹독했다. 대학원 과정뿐만 아니라 학부 과정까지 학점을 따야 했고, 각종 발표 및 세미나 자료를 만드느라 잠잘 시간을 줄여가며 치열하게 자신을 담금질해야 했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여러 편견의 유리벽을 뚫어야 했고, 기득권과 맞서야 했으며, 대학입시를 앞둔 아들에게 죄인이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며 숨 가쁘게 20여 년을 달려온 그는 이제 담담하게 말한다.
“그렇게 나에게 단 한 번뿐인 중년 시절이 피 터지는 도전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덕에 박사 학위도 따고, 내 분신 같은 곤충을 연구해 세상에 알렸으며, 그 곤충의 언어를 통역하며 벅찬 희열을 맞보았습니다.”
우리에게 곤충은 중요해
사람 대부분에게 곤충은 그저 사소하고 하찮은 미물로, 곤충에 대해 깊이 생각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가끔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곤충을 소위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벌레로 여기고, 사람에게 그리고 사람이 아끼는 식물에게 피해를 주는 해로운 존재라는 이미지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사람들은 곤충의 목숨을 쉽게 생각한다. 사람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고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임에도, 단순히 징그러운 벌레의 개체 수가 급증했다는 이유로 살충제 세계를 맞고 영문도 모르고 무참히 죽어가는 가는 숱한 곤충을 떠올려보라. 곤충은 정말 해롭기만 한 존재일까? 작은 생명체를 신기해하며 곤충과 친했던 어릴 적 ‘나’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곤충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유지하는 데, 특히 인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곤충은 지구에 사는 생물로서 인간의 대선배이기도 하다. 인류는 약 700만 년 전에 탄생했지만, 곤충은 지금으로부터 약 4억 8천 년 전에 지구에 등장했다. 곤충의 종수 또한 인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지구상에 사는 동물이 약 150만 종인 데 반해, 곤충은 약 100만 종 이상으로, 지구상에 사는 동물의 약 1/3이 곤충이다. 또한 전체 식물의 약 87%를 동물이 중매를 서고, 그 대부분은 곤충에 의해 이뤄진다. 그뿐 아니라 곤충은 사체나 폐기물 등을 적극적으로 분해하여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먹이 그물망에 필수적인 존재다.
“식물이 죽으면 누가 분해해서 거름으로 되돌릴까요? 분해자 대부분도 곤충입니다. 곤충이 죽은 식물을 먹으며 잘게 분해해 다른 식물을 위한 거름으로 되돌려놓습니다. 곤충이 없으면 식물도 지구에서 사라집니다.”
인생과 충생이 직조된 특별한 이야기
이 책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하루살이, 벌, 매미, 메뚜기, 잠자리, 나비뿐만 아니라 특수한 환경에 살거나 너무 작아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수많은 곤충이 등장한다. 그들이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어떻게 자식을 낳고 키우는지, 천적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 대항하는지, 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등 다양한 곤충의 삶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하찮은 미물에 불과해 보이는 곤충들이 지구 환경에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기후 온난화가 곤충의 생존 나아가 인류의 생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 우리가 놓치고 있던 곤충의 위대함을 일깨운다. 또한 다분히 인간중심주의에 사로잡혀 곤충과 상생 ․ 공존하는 법을 잊어버린 현대인에게 우리가 가져야 할 세상에 대한 태도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도록 경종을 울린다.
“인간과 곤충은 경쟁 관계가 아닌 공존과 상생 관계입니다. 곤충은 나와 같이 살아가는 나와는 조금 생김새가 다른 존재일 뿐입니다. 곤충은 인간과 더불어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원입니다.
각 장의 도입부에선 저자의 삶 속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영어 교사가 꿈이었다가 결혼 후 두 아들을 둔 엄마였던 저자가 어떻게 곤충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고충들이 있었는지, 곤충을 연구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일상의 따뜻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함께 곁들어져 있어 흥미를 돋운다. 저자의 삶과 곤충의 이야기가 씨올과 날올로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어 독자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는 한편, 단순하지만 현재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곤충을 통해 삶의 지혜를 선사한다. 작은 생명체를 통해 삶과 우주의 이치를 들여다보자.
“곤충은 묵묵히 현재 삶에 충실하고 위기 상황에서 번뜩이는 지혜를 발휘해요. 곤충은 지혜로운 우리의 이웃이자 친구예요. 저는 곤충의 삶을 통해 무소유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