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특정한 방향으로 단계를 밟아 진화한다는 환상
사회적 현실은 그보다 복잡하고 다채롭고 흥미롭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그 웬그로가 애초에 답을 찾고자 한 문제는 불평등의 기원이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사회적 ·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과학 분야의 화두로 떠올랐다. 다보스 포럼에서도 ‘세계적 불평등’이 주요 쟁점으로 오를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많은 경우 사회적 불평등 연구는 문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다. 지금까지의 문명사는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락의 스토리는 인류가 농경을 도입한 약 1만 2,000년 전쯤 시작한다. 작은 무리를 이루어 평등하게 살아가던 인간 집단이 농업혁명 이후 대규모 사회로 발전하면서 계층화되었고, 자연스럽게 불평등과 부자유가 인간 삶의 조건이 되었다는 비관적인 이야기. 오늘날 심화하는 불평등은 이렇듯 인류가 단계를 밟아 진화해온 필연적 결과일까? 우리는 스스로 속박을 향해 달려든 것일까?
두 저자는 공동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불평등의 기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가 불평등해지려면 그보다 앞서 평등해야 한다. ‘평등 → 불평등’이라는 도식이 성립해야 하는데, 이는 최근 30여 년간 축적되어온 고고학과 인류학 연구 성과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다. ‘순진 · 소규모 · 야만 → 복잡함 · 대규모 · 문명’이라는 사회 진화의 신화도 실제 역사와 다르다. 세계 각지에서 제각각 다양한 자연환경에 맞닥뜨린 우리의 선조들은 그처럼 단선적이고 고정된 경로를 따라 역사를 써오지 않았다. 사회적 현실은 항상 복잡하고 다채롭고 흥미롭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의 ‘원래’ 형태란 없으며, 인류 역사에는 그로부터 파생된 단계별 방향성도 없다. 다만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 체제에 붙들려 있다. 따라서 저자들은 질문을 수정한다. ‘우리는 어쩌다 폭력과 지배를 기초로 하는 하나의 사회적 형태에 전 지구적으로 고착되어버렸는가?’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 스티븐 핑커가 놓친 과거의 진실
불평등과 부자유가 삶의 필연적인 조건이 된 이유
저자들이 볼 때 인류사 분야의 주요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나 유발 하라리도 종래의 ‘사회 진화’ 도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도식은 유럽 계몽주의의 소산이다.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문명 이전 자연 상태에 대한 ‘사고 실험’에서 시작해 사회계약과 근대국가의 출현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론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근거가 부족한 추정에서 시작한 역사다. 루소와 홉스는 17~18세기 유럽 당대의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의 진실을 충분히 관찰하지 않은 가설과 거기에서 유도한 목적론적 사고방식을 견지했다. 현대 학자들이 이어받은 역사 서술 방식이다.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수렵 채집인 무리를 정치적 자의식 없는 유인원 취급한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 과학학명’을 거친 인류에게는 스스로 만든 제도에서 벗어날 힘이 없다. 우리는 현재의 체제에 고착되었고, 다른 삶의 가능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다이아몬드는 인간에게 유의미한 수준의 사회적 평등은 원초적인 소규모 무리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결론짓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치적 불평등의 기원이 농경에 있다고 단언한다(《정치 질서의 기원》). 다이아몬드와 후쿠야마는 공히 복잡한 대규모 인간 사회는 위계질서와 관료제를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저자들이 현대판 홉스주의자로 부르는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지금 다시 계몽》에서, 고대의 우리 선조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잔혹하고 짧은 삶을 살았고, 유럽 문명의 발전을 토대로 이룩한 현대의 삶은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평화롭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단선적 사회 진화 이론을 옹호하면서 불평등과 부자유한 상황을 바꿀 대안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그런 결론을 뒷받침할 역사적 증거는 없다고 비판하며, 더 나아가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실험한 우리 선조들의 새로운 역사를 재구성하는 “희망과 영감이 가득한 훌륭한 책이다”(이상희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수렵 채집, 농경, 사유재산, 도시, 국가, 민주주의 등
최신 연구 성과가 밝힌 역사의 진실에 기반한 문명의 역사
그레이버와 웬그로는 인류 사회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전복한다. 최근 몇십 년간 발견되었으나 전문 학술 영역 안에서만 논의되어온 새로운 고고학·인류학 증거들이 900여 페이지에 걸쳐 빼곡하게 제시되어 있다.
• 수렵 채집인도 정치적 자의식 갖춘 인간이었다.
기존의 서구 지성사에서 선사시대 수렵 채집인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순진무구한 미개인이거나 이기적이고 냉혹한 야만인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적절한 삶의 방식에 대해 토론하고 성찰하는 능력을 갖춘 현대인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 북극권의 이누이트족은 여름에는 소규모로 쪼개져 수렵 채집을 하면서 강력한 가부장제를 작동시키는 반면, 겨울에는 한데 모여 평등한 집합적 삶을 산다. ‘적절한 사회는 어때야 하는가?’ 하는 정치적 의식의 결과, 그들은 상이한 사회의 가능성을 실험했으며, 이 같은 고고학적 증거는 계속 쌓이고 있다.
• 농업혁명은 없었다.
혁명은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과 그로 인한 전면적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이다. 농업은 혁명적 사건이 아니었다. 농업혁명의 요람이라는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농경으로의 이행은 약 3,00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브라질 남비콰라족에게서 발견한 증거는 ‘취미 농사’(‘했다 안 했다 하는 농경in-and-out-of-farming’) 혹은 ‘자유의 생태학’이라고 부르는 느슨하고 유연한 재배 방식 단계로, 수렵 채집과 함께 오래 존속했다. 농경은 하라리식으로 말해 밀과 인간의 ‘파우스트식 극적 계약’에 의해 파격적이고 진지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초기 농부들은 채집인, 어부, 사냥꾼의 관심 밖 땅에 정착한 약자였다. 신석기시대 농경은 실패할 위험이 있었던 실험이었고, 종종 실패했다.
• 사유재산의 기원은 신성 개념이다.
사유재산은 농경으로 인한 잉여 생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을까? 농업경제보다는 제의적 맥락에 답이 있다.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소유권은 신성 개념에 기초한다. 사적 재산 개념과 신성 개념은 모두 본질적으로 배제의 구조를 띤다. 신성한 물건은 세상과 격리되어 보존된다. 어떤 물건이 ‘내 것’이 되는 순간 그것은 타인의 손길에서 격리되어 나의 절대적 권한 아래 놓인다. 제의에 사용된 특정 물건에 신성 개념이 주입되면서 여타 일상적 도구와는 구별되는 배타적 소유의 관념이 싹텄다.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수렵 채집인 사회에서도 소유권은 철저하게 보호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란다족의 엄격하고 고통스러운 성년식 제의를 거친 남성은 자기 씨족의 신성한 수호자로서 거듭나고, 토템 문양이 새겨진 나뭇조각이나 돌조각은 신성한 물건으로서 그의 재산이 된다.
• 대규모 사회가 반드시 지배와 위계를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 인구가 모여 큰 도시를 이루고 살면서도 행정적 위계와 권위주의적 지배의 흔적이 부족한 고고학적 발견이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흑해 북쪽의 선사시대 메가 유적에서는 중앙 집중화하지 않고 자율적 가정들을 조직한 시민 의회가 형성되었다. 남아시아 최초의 도시 문화인 인더스 문명에서는 지배 계급과 관리자 엘리트가 부재한 상태에서도 청동기시대 대규모 인간 정착지가 출현했다. 군주제로 기울어 피라미드를 건설했다가 이내 돌아와 주민들에게 다가구 공동주택을 공급한 멕시코 테오티후아칸 같은 독특한 사례도 있다. 우리는 공동체가 도시 규모를 넘어가면 국가로 ‘진화’한다고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저자들에 따르면 국가는 도시에서 진화한 것이라기보다, 지배의 기초적인 세 원칙(‘주권’ ‘관료제’ ‘정치’)이 다양한 방식과 조건으로 결합한 체제다. 그런데 그 원칙들의 역사적 기원이 제각기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함께 묶여야 할 실질적 이유가 없다. 오늘날의 국가는 강고해 보이지만 실상 그 뿌리는 허약한 셈이다. 국가라는 지배 체제는 다른 모든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가변적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상상을 방해할 이유가 없다.
• 민주주의와 자유·평등의 이념은 아메리카 선주민 사상에서 발원했다.
오늘날 세계 질서의 근간으로 알려진 ‘서구적’ 근대정치 이념의 시원이 유럽 계몽주의 지식인이 아니라 아메리카 선주민이라는 폭로는 놀랍다. 북아메리카 동부 수림지대의 웬다트족 철학자-정치가 칸디아롱크의 유럽 문명에 대한 ‘선주민 비평’은 인간 해방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었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은 이성을 가진 인간일 수 없네.” 칸디아롱크는 인류 사회의 진보와 개선을 구상한다던 유럽 계몽주의 기획의 핵심인 합리적 이성과 개인적 자유의 부재를 비판했다. 또 아즈텍에 대항해 틀락스칼라와 동맹을 맺는 과정에서 코르테스와 스페인인들은 틀락스칼라의 민주적 사회 운영 시스템에 감명받았다. 당시 유럽인들은 거의 모두 반민주적이었기 때문에 중앙아메리카의 그 만남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배운 쪽이 있다면, 그것은 스페인인들이었다. 민주주의와 자유 · 평등의 이념은 아메리카 선주민에게 ‘카피레프트’가 있다.
유럽 중심주의로 인해 가려진 실제 역사를 복원하는 여정에서
더 과학적이고 더 낙관적으로 재정립하는 인간 본성과 사회에 대한 이해
그렇다면 어째서 ‘정설’ 혹은 ‘통념’은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는가? 저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배워온 역사는 아메리카 선주민 비평이 가하는 위협에 유럽 지식인들이 대응해 내놓은 단선적 사회 진화 이론의 유산이다. A. R. J. 튀르고와 애덤 스미스가 사회 발달의 정점을 ‘상업적 문명사회’로 상정하면서, 복잡한 노동 분업을 위해 자유와 평등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덕분에 전반적인 부와 자산이 눈부시게 증가할 수 있었던 유럽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사회 모델이 되었다. 이러한 응수는 아메리카 선주민 사상에 맞서 유럽 우월성이라는 감각은 지켜냈지만, 유럽식 버전을 따르지 않은 인류 과거의 방대한 부분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유럽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역사를 물질적 진보의 이야기로 각색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지금의 세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인류가 오랜 기간 이루고자 한 목표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이 체제는 우리가 잠깐 고착된 일탈일 뿐이며, 인류는 수만 년 전부터 다양하고 유동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왔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유다. 저자들은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자유와 자유의 직접적 결과인 평등을 포기하지 않고도 다양한 문명을 실현해온 장대하고 심오한 실제 역사의 흔적을 집대성해 보여준다. 그레이버와 웬그로는 현재의 우리도 자유를 희생하지 않고 다르게 살아갈 가능성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두 저자의 10년에 걸친 협업은 문명 전반에 걸친 신화와 통념이 인류 역사에 드리운 어둠을 몰아내고 인간 본성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새벽의 여명을 비춘다. 인간을 실제보다 사려가 부족하고 덜 창조적이고 덜 자유로운 존재로 그리는 진화생물학과 빅히스토리 계열의 문명사가 제시하지 못하는 더 과학적이고 더 희망적인 인류 역사의 지평을 확인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독자들을 새로운 역사학으로 불러들이려 한다. 인간의 역사는 단단하게 확정된 것이라기보다 가능성들로 가득 차 있다.”
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