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찬란하게 솟구치는 화염 속으로 걸어가는 위태로운 연인
그들의 일그러진 사랑을 포착한 독보적인 시선
feu 마리아 푸르셰 저자 김주경 역자
  • 2023년 12월 06일
  • 380쪽131X204mm무선비채
  • 978-89-349-4625-0 03860
불
feu 저자 마리아 푸르셰 2023.12.06

“기억해라. 너는 네 안의 그늘을 등불로 삼고,

너의 욕망을 바로 너 자신으로 받아들였다.”

 

찬란하게 솟구치는 화염 속으로 걸어가는 위태로운 연인

그들의 일그러진 사랑을 포착한 독보적인 시선

 

“미셸 우엘벡과 로맹 가리 스타일로 아니 에르노의 탐구를 새롭게 이어가는 작품”이라는 찬사와 함께 공쿠르상, 르노도상 등 프랑스 대표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고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소설에 수여하는 파리 리브고슈상을 수상한 마리아 푸르셰의 《불》이 비채에서 출간되었다. 《불》은 허울뿐인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교수 로르와 파리 최대 상업지구 라데팡스의 은행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는 클레망의 일그러진 사랑을 그려낸다. 두 화자를 번갈아 내세우며 펼쳐내는 상반된 문체와 일인칭과 이인칭을 넘나드는 시점 등 실험적인 형식에 더해, 여성의 욕망과 세대 담론 등 현시대의 첨예한 쟁점을 담아내며 프랑스 문단에 논쟁과 찬사를 동시에 일으켰다. 

P.10
그는 입을 다물었다. 갸름한 그의 얼굴에 아주 잠깐 경계심이 사라진다. 처음으로 너는 뭔가 취약하고 상처 입은 어떤 것이 마치 표류하는 난파선의 한 조각처럼 그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걸 발견한다. 그 배가 난파하기 전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처음엔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이목구비도 그럭저럭 평범하다고 생각했음에도, 지금 너는 그가 아주 잘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제발 쓸데없는 생각 좀 그만두고 일이나 해라. 죽도록 일한 유능한 여자들, 무보수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지하 세계에서 네 엄마가 짜증스럽게 말한다.
P.37
“뭐? 담배 하나 달라고?” 베라가 놀라며 묻는다.
“안 될 거 있니?”
너도 바로 이 나이였다. 너도 이 아이처럼 견고하고 고집스러운 것으로 이뤄진 삶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너는 삶이란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것임을 배웠다. 타협하고, 반복하고, 더러 잊어버리면서, 혹은 치유되면서……. 그때의 나이와 지금의 나이, 그 둘 사이에서 오랜 잠을 잔 것 같다.
P.39
난 녀석을 파파라고 부른다. 몹시도 거룩하신 나의 어머니는 눈곱만치도 반응하지 않지만, 난 어머니가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는 꼴을 보려고 그렇게 이름 붙였다. 파파, 즉 ‘아빠’는 일반적으로 가정의 가장을 의미하니까. 난 이 ‘일반적인 경우’에서 이미 너무 많은 실패를 맛보았기에, 어느 날부턴가 이제 그만두겠다고 다짐하고 선언했다. 자, 이제부터 우리 집의 ‘아빠’는 개야. 이렇게라도 다시 시작해야지.
P.212
이건 사랑 이야기가 아니야. 완전히 가면무도회지. 이제 조금도 야하지도 않아. 나는 그녀가 차라리 휴대전화를 안 갖고 오길 바랐어. 저녁 시간 내내 그 덩치가 로르에게 큰딸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문자를 보내는 통에, 그 식탁에 세 사람이 앉아 있는 것 같았거든. 로르에게 제발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틈조차 찾지 못했지. 마침내 로르는 그 성가신 남자에게 가브리엘의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대답했어. 내겐 물어보지도 않고.
나는 가브리엘이 아니고, 우리 집도 여인숙이 아니야.
P.332
너는 그 아우성을 찬가처럼 듣는다. 너의 아이를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너는 생각한다. 그래, 계속하렴.

우리의 아이들에게
태어남과 동시에 두려움에 차 비명을 지르는 그들에게
사랑을 부르짖는 그들에게
피 묻은 그 손으로
북을 두드리며.

옮긴이의 말
작가이미지
저자 마리아 푸르셰 (Maria Pourchet)
1980년 프랑스 동북부 도시 에피날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파리 제12대학교에서 사회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2006년부터 2014년까지 파리 제10대학교에서 문화사회학을 가르쳤다. 2009년 다큐멘터리 <무대 위의 작가들Des écrivains sur un plateau>을 공동 제작한 것을 계기로 현재까지 픽션과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방송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2012년 소설 《나아가다Avancer》를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하였고, 2013년 《로마에서의 하루Rome en un jour》로 에르크만차트리안상을, 2020년 《성급한 사람들Les impatients》로 공쿠르 데 리세앙상을 수상했다. 그 외의 작품으로 《챔피언Champion》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여성Toutes les femmes sauf une》 《웨스턴Western》 등이 있다.

2021년에 발표한 《불》은 마리아 푸르셰의 여섯 번째 소설이다. 파멸하는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현시대의 문제의식으로 끌어오며 과감하고 유려한 문체로 펼쳐내 “미셸 우엘벡과 로맹 가리 스타일로 아니 에르노의 탐구를 새롭게 이어가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같은 해 파리 리브고슈상을 수상했으며, 공쿠르상, 르노도상, 플로르상, 데상브르상 등 프랑스 대표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사진 ⓒ Richard Dumas 
'출판사 리뷰'는 준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