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작가와의 서면 인터뷰

2024.02.26
-- '청'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대만의 현대화 과정과 식민 시대 역사가 펼쳐지는 대서사다. 이 작품을 통해 지금의 독자에게 전달하려 한 인사이트(또는 메시지)가 있나. 
제게는 오랜 신념이 있습니다. 가족사는 필연적으로 국가민족사 또는 세계사와 신비하게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보잘것없는 소시민이라 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만의 정치적 특수성 때문에 “예술은 예술이고, 정치는 정치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예술이든 그것으로 표현된 내용이 역사적 상황(설령 바로 현재라고 해도)과 연관되어 있다면, 예술은 국가민족사와 세계사 그 모든 것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 한국도 1910~1945년 일본 식민 지배 역사가 있고 대만과 문화적 공통 분모(가부장적 유교 문화권)도 있어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침략의 야욕이 남기는, 가장 깊은 상흔은 뭐라고 생각하나. 청의 아버지와 압바스의 아버지의 삶에서도 전쟁의 참상이 느껴졌다.  
침략자의 핵심은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 “너보다 내가 더 훌륭하게 통치할 수 있으므로 나는 너를 지배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국주의와 대동아공영권도 궁극적으로는 이런 관념이었습니다. 유가문화의 군신(君臣) 사상, 중국 역사의 대일통사상(大一統思想)은 모두 하나의 거대하고 통일된 제국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 민중의 행복은 그런 개념 위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폐기되어야 마땅한 구시대적 관념이며,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가 전쟁을 치를 만큼의 가치도 없습니다. 전쟁이 민중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상흔은 그 어떤 권력자의 말도 믿을 수 없다는 것과 그 어떤 권력자도 민중의 생사를 진심으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 '작가의 말'을 보면 2006년 쓴 소설 '수면의 항로'가 이번 소설의 발단이 됐다고 한다. 자전거를 모티브로 한 계기를 설명해달라.   
《수면의 항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대만 소년공들이 일본의 전투기 생산공장에서 일했던 역사에 관한 소설입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서술자의 아버지가 타이베이의 명소인 중산탕(中山堂) 앞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사라집니다. 한 독자가 제게 편지를 보내 그 자전거는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고, 저는 나중에 소설을 통해 그 질문에 대답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도둑맞은 자전거'는 대만의 현대사 맥락에서 볼 때 무엇을 상징하나.  
이 책의 영문판 제목은 ‘The Stolen Bicycle’입니다. 도둑 맞은 자전거, 도둑 맞은 기억. 어쩌면 당시 정권을 쥔 사람들은 민중이 기억하지 못하길 바랐던 기억이 자전거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우리 힘으로 그걸 되찾아야 합니다.

-- 집필 전 방대한 서사를 위한 개요를 먼저 구상했나. 과거와 현재가 교차 서술되고, 자전거를 찾는 여정에서 만난 압바스와 일본군에 복무한 바쑤야의 구술 등 다양한 인물 이야기로 확장하는 전개는 정교한 구성을 필요로 했을 듯하다. 어떤 방식으로 집필했는지 궁금하다. 
개요는 있었지만 글을 쓰면서 드라마틱한 전환이 있었습니다. 한 예로 이 소설을 쓰면서 제 자신이 골동품 자전거 수집가가 되었고, 그러면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자전거 이야기를 소설에 녹여낼 수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소학교에서 기르던 오랑우탄의 이야기가 전체 서사에 커다란 전환을 가져온 것과 비슷합니다.

-- 은륜부대 내막부터 말레이반도 밀림 전투까지 동아시아사를 아우르고자 방대한 자료와 연구의 조사가 필요했을 듯한데, 어떤 고증 과정을 거쳤나.  
예전에 비하면 자료를 수집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2차세계대전 당시 동아시아 역사에 관한 모든 자료를 찾았습니다. 더 나아가 국민당 부대가 대만으로 패퇴한 역사도 읽었습니다. 코끼리 린왕에 관한 자료는 일반 도서관에서 충분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고, 타이베이시립동물원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았습니다. 일반인은 거의 가지 않는 곳이지요. 그곳을 자주 찾아가 자료를 수집했고, 심지어 린왕을 따라 대만으로 온 노병의 개인회고록도 읽었습니다. 그 자료들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행복표 등 대만의 자전거 산업 발전사도 흥미로웠다. 이 소설을 위해 옛 자전거를 수집하고 수리하고 복원하는 시도도 했다는데. 또한 작품에 '철마지'를 더한 이유도 궁금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제가 골동품 자전거 수집가가 되었고, 지금도 그 중 30여 대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행복표 자전거를 찾아다니며 대만이 한때 매우 중요한 ‘자전거왕국’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대만의 현대화는 중고품의 현대화였고, 대만의 산업사도 일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산업사, 서민사, 전쟁사가 씨줄과 날줄처럼 직조되어 있는 점이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의도적으로 소설에 ‘철마지’를 덧붙여 이 부분의 정서를 불어넣고, 서술자의 내면 감정을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 이번 작품은 한국에 출간된 작가님 소설집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와 생태 에세이 '나비탐미기'와의 연결고리가 있었다. 평범한 인물의 삶과 (환경운동가로서) 자연 생태에 특별히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나. 
‘불공평’은 모든 민중운동의 근본입니다. 정치적인 요인으로 인해 대만인이 읽는 역사는 거의 중국사이고 대만이라는 이 땅과 이 땅의 자연 생태를 잊고 있습니다. 제 작품들을 관통하는 정신은 바로 ‘망각에 대한 저항’입니다.
자연생태에 대한 관심은 산업화를 거친 모든 국가의 민중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늘 잃어버린 뒤에야 그 사라진 것들이 자신에게 매우 중요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 7대손에게 건강한 생태 시스템을 물려주는 것은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태도입니다.

-- 이 소설에선 사실과 허구, 판타지가 뒤섞였다. 특히 코끼리의 시점에서 전쟁의 슬픔을 서술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 판타지적인 서술을 택한 이유가 있나.
독자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정해주는 책만 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소설의 매력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소설은 아주 자유롭습니다. 안 그런가요?

--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제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 말과 글에 대한 예민함이기 때문일 겁니다.

-- 작가님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보다, 미지의 것을 알고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자 글을 쓴다고 들었다. 자신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를 지니나. 
글쓰기는 제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특히 소설을 쓸 때 그 속의 인물과 내 인생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려면 그들의 특기와 성격을 간과할 수 없고, 이것은 글쓰는 사람이 미지의 지식을 추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제게 있어서 글쓰기란 이 세계와 인간의 본성을 탐색하는 안내자와 같습니다.

-- 2018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이 작품 활동에 있어 의미있는 계기가 됐나. 당시 부커재단의 국적 표기('대만, 차이나')에 문제제기를 했는데, 어떤 심경이었나.  
제 작품의 독자가 대만인이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대만의 정치 상황이 특수하고, 중국과 예속 관계에 있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국가는 사실조차도 부인합니다. 모든 것을 그들의 주장하는 대로 주장합니다. 잘못된 정보가 아니었다면 주최측에 정보를 변경해달라고 요청할 필요가 없었겠죠. 물론 논리적으로 항의해야 했습니다.

-- 대만은 여전히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운 중국과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긴장 가운데에 놓였다. 한국도 열강의 역학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파워 게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한국과 대만이 지켜야할 가치 또는 태도가 있을까.    
우리에게 권력이 없는데 존엄성이 있을 수 있을까요? 대국의 힘은 확실히 강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달라고 그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새로운 세대의 인류는 가치관에 따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인 가치관에 따른 선택은 자유, 민주, 법치입니다.

-- 팬데믹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과 튀르키예 강진으로 고통받는 세계인들이 있다. 이런 시대에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문학은 언제나 ‘의도치 않은 작용’으로 인류의 정신적 가치를 구현했습니다. 사람이 실연했을 때 문학은 조용히 그곳에 있고, 인생의 좌절을 맛보고 여러 가지 감정적 난관을 겪을 때도 문학은 거기에 있습니다. 생명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사색할 때도 역시 다양한 이념을 가진 많은 문학이 그곳에 있습니다. 문학의 가치는 바로 존재이며, 실질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학의 존재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에게 선택을 가르쳐줍니다. 이것이 문학의 강한 힘입니다.

-- 지난해 9월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 차 내한했다. 한국 문학 작품을 접하거나 관심을 둔 작가가 있나.(혹은 한국 영화, 드라마, 음악 등 접한 경험이 있는 콘텐츠를 말씀해 주셔도 좋다)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의 작품을 수업 교재로 쓰기도 했습니다. 영화감독 중에서는 이창동 감독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는 시적 감수성과 예리한 관찰력을 겸비한 감독입니다. 한국의 예술은 활력이 넘치고 다원화되어 있습니다. 무척 매력적인 세계죠.

-- 현재 어떤 작품을 집필하고 있나. 한국에서 새 책 출간이나 내한 계획은. 
최근 새로 발표한 장편소설 《해풍주점》의 홍보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만 전역의 86개 서점에서 저자사인회와 강연을 열 계획입니다. 지금도 홍보 활동을 위해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신화와 역사, 동화를 함께 버무려낸 소설입니다.
사실 올해도 한국의 한 단체로부터 초청을 받았지만 제 일정과 겹쳤습니다. 9월부터 리투아니아, 프랑스, 일본, 스페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하루 빨리 한국을 다시 방문해 독자와 한국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작년에 광주에서 열린 아시아문학축제에 참가했을 때 주최측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역사유적을 둘러보았고, 신정호 교수님께서 구경시켜주신 자연보호구역도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자소개

우밍이
저자 우밍이 (吳明益) 우밍이 吳明益 작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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