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을 닮은 사람
《해풍주점》을 번역하는 동안 오래된 동화 한 편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물론 어린아이에게 잠들기 전에 읽어줄 수 있는 평온한 동화는 아니다. 이 책에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산을 파헤치는 거대한 기계가 있고, 먹고살기 위해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현실보다 더 깊은 곳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거인이 산다.
거인 드나마이는 트루쿠족의 오래된 전설 속 존재다. 사람보다 오래 살지만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사람들의 상상과 기억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그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거인은 차츰 기력을 잃고 쇠약해진다. 누군가 공격하고 죽여야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고, 누구도 그의 이야기를 다음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거인은 소멸한다.
우밍이의 소설에는 늘 인간의 세계를 가만히 바라보는, 인간 바깥의 무언가가 있다. 《복안인》에는 수많은 눈으로 세상을 지켜보는 복안인이 있었고, 《해풍주점》에는 산과 하나가 된 거인이 있다. 거인은 대자연이라고 할 수도 있고, 오래된 문화와 기억일 수도 있다. 인간이 잃어버린 상상력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존재를 대하는 우밍이의 태도는 소설 앞부분의 짧은 장면에서 또렷이 드러난다. 깜깜한 동굴 안으로 들어간 투누흐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이렇게 말한다. “난 투누흐 우민이라고 해요. 사람이에요. 당신은 무엇인가요?” 낯선 곳에서 낯선 존재를 만났을 때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어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다. 상대가 반드시 인간이라는 보장은 없다. 조상의 영혼이나 산신, 나무의 정령일 수도 있고, 어떤 동물이 모습을 바꾼 존재일 수도 있다. 이 짧은 물음에 우밍이의 소설을 관통하는 시선이 담겨 있다. 그의 소설 속에서는 대자연도 동물도 인간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아닌 것들에게 원래부터 그들의 자리였던 곳을 그대로 내어줄 뿐이다.
《해풍주점》에서도 자연은 인간의 삶 바깥에 놓인 배경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 산과 바다, 전설과 기억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거인은 쇠약해지고, 인간이 편리함을 좇아 환경을 바꾸면 숲에 사는 게잡이몽구스의 삶도 흔들린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구원하거나 대표할 수 없고, 모두가 서로의 삶에 흔적을 남기며 함께 변해간다.
그렇다고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만을 앞세우는 것은 아니다. 우밍이는 누가 옳고 그른지 판정하지 않는다.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진심만큼이나, 당장의 생계를 외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사정도 함께 바라본다. 그가 쓰고 싶었던 것은 정의로운 투쟁의 기록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저항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저항”이었다.
작고 느린 저항은 쉽게 승리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절망에서 그치지 않는다. 거인은 사람들의 상상에 기대어 산다. 누군가 계속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한, 한 번의 실패가 완전한 소멸로 끝나지는 않는다. 이전 세대가 남긴 경험과 기억은 대지 아래 지층처럼 켜켜이 쌓여, 언젠가 다음 세대가 딛고 설 자리가 된다. 바로 여기에 우밍이가 말하는 희망이 있다. 한 사람이 기억하고, 다른 한 사람이 건네받고, 그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진다면, 아무리 작고 느려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우밍이가 무척 낭만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이 얼마나 단단하고 쉽게 바뀌지 않는지 알면서도, 사라지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작고 느린 저항이 결코 헛되지 않다고 믿는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순진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이 믿음을 소설 안에만 두지 않았다. 《해풍주점》이 세상에 나온 방식 자체가 그 믿음의 실천이었다.
《복안인》과 《도둑맞은 자전거》를 통해 타이완을 넘어 여러 나라의 독자에게 알려진 우밍이는 신작을 출간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은 작가다. 대형 출판사와 유통망을 통해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식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해풍주점》 원고를 작은 독립서점 소소책방(小小書房)이 운영하는 샤오셰출판(小寫出版)에 맡겼다. 마케팅 기획 역시 독립서점 와당인문서옥(瓦當人文書屋)이 담당했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두 서점에 우밍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소소책방은 그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2006년부터 타이베이 융허(永和)의 좁은 골목을 지켜온 이 작은 서점은 책을 판매하며 독서 모임과 글쓰기 수업을 열어오다가 2011년에 샤오셰출판을 설립했다. 우밍이는 자신이 무명이었던 시절부터 자기 작품을 읽고 독자에게 권하며 자신을 초대해준 작은 서점들을 잊지 않았다. 2015년 《도둑맞은 자전거》를 냈을 때는 소소책방에서 출발해 자전거를 타고 530킬로미터를 달리며 타이완 곳곳의 독립서점 열한 곳에서 독자들을 직접 만났다. 《해풍주점》은 그 인연이 다시 돌아온 책이다. 우밍이는 언젠가 자신의 책이 많이 팔리는 날이 오면, 자신이 얻은 것을 작은 서점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해풍주점》은 어디서도 할인하지 않고 모든 서점에서 똑같은 정가로 판매했고, 신간 홍보행사는 독립서점에서만 열었다. 우밍이는 직접 차를 몰고 타이완 곳곳의 독립서점 여든여섯 곳을 찾아다녔다. 북쪽 끝에서 남쪽 끝 외딴섬까지, 평소 작가의 북토크가 열리기 힘든 아주 작은 동네 서점까지 들렀다. 강연료도 차비도 받지 않았다. 출판사 사무실에 앉아 미리 수백 권에 서명해두는 대신, 서점에 걸어 들어가 독자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이름을 물은 뒤 한 권씩 직접 서명했다. 사인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니냐고 그는 되물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을 독립서점을 ‘돕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다. 무명에 가까웠던 시절부터 자신의 작품을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고, 오래전 받은 것에 대한 응답일 뿐이라고 했다.
우밍이는 거인을 닮은 큰 사람이다. 이름이 널리 알려져서가 아니다. 자신을 낮춰 작은 것들이 묻히지 않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 쉽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라져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는 사람이어서다. 그는 “이 시대에는 작가가 조금 더 작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은 작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함께 빚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거인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멈추면 생명력을 잃는다. 책도, 작은 서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책을 읽고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고, 작은 공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사라지면 책은 그저 물건으로만 남는다. 서점 하나가 문을 닫는 일도 단지 책을 파는 가게 하나가 줄어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뜻밖의 책을 만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지 못했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작은 입구 하나가 사라지는 일이다.
《해풍주점》은 사라진 것이 모두 돌아올 수 있다고 약속하는 동화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잊지 않고 그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는다면, 완전히 사라지는 것만은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이 더는 거인을 믿지 않더라도, 누군가 여전히 산을 올려다보고, 오래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이 받은 것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한, 거인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산의 모습으로 누워 있던 드나마이처럼 말이다. 타이완 곳곳의 작은 서점을 찾아다니며 우밍이가 한 일도 어쩌면 그렇게 거인을 살려두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한 작가가 이야기 하나를 당신에게 가만히 건넨다. 거인을 오래 살아 있게 하는 일은 이제 이야기를 받아 든 당신의 몫이다.
2026년 6월
옮긴이 허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