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멜론 슈거에서
우리는 워터멜론에서 즙을 짜내 슈거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 불에 졸이고, 그다음엔 슈거로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삶을.
#영미문학
워터멜론 슈거에서 리처드 브라우티건 저자 최승자 역자
  • 2024년 05월 24일
  • 228쪽120X186mm비채
  • 978-89-349-6208-3 04800
워터멜론 슈거에서
워터멜론 슈거에서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 2024.05.24
미국 문학의 전설 리처드 브라우티건과 시인 최승자의 만남!
20세기 고전 《워터멜론 슈거에서》 전면 개정
설탕으로 만들어진 세계 ‘아이디아뜨’라는 아름답고 위태로운 신기루
리처드 브라우티건 타계 40주년을 맞이하여 《워터멜론 슈거에서》가 새로운 장정으로 독자를 찾는다. 시인 최승자가 미국의 헌책방에서 발견해 직접 번역까지 맡아 소개한 작품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이장욱, 김애란, 천명관 등 유수의 작가에게 사랑받는 ‘작가들의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일곱 가지 색 설탕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상상의 마을 ‘워터멜론 슈거’를 무대로 삼는다. 일 년 열두 달 달콤한 냄새가 휘돌고 어떤 꿈이든 실현되는 완벽한 낙원 속, 주어진 풍요를 만끽하는 이와 낙원을 부정하는 이들 사이에 한바탕 난장이 벌어진다. <뉴욕타임스 북리뷰>와 <타임스>로부터 “감히 압축할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와 우아한 매력을 자아낸다” “읽는 이를 매혹하는 독창적인 작품, 대단히 우화적인 방식으로 눈앞의 현실을 이야기한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P.17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좀 궁금하겠지만, 나는 정해진 이름이 없는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내 이름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그냥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불러달라. 오래전 당신에게 있었던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한다고 해보자. 누군가 당신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데 당신은 답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혹은 아주 세차게 쏟아졌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 이름이다. 
P.32
척 영감은 누구나 뭔가 할 일이 있어야 하고, 다리에 점등하는 게 바로 자기 일이라고 말한다. 찰리도 그와 같은 의견이다. “척 영감이 점등 일을 하고 싶어 한다면 하게 놔둬야지. 그래야 영감이 다른 장난질을 치지 않지.” 그건 농담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척 영감은 최소 아흔 살 이상이고, 장난질이란 몇 십 년의 속도로 움직이면서 이미 그를 멀리 벗어나버렸기 때문이다. 
P.61
밤은 차가웠고 별은 붉었다. 나는 걸어서 워터멜론 공장 근처로 내려갔다. 우리가 워터멜론을 슈거로 만드는 곳이었다. 우리는 워터멜론에서 즙을 짜내 슈거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 불에 졸이고, 그다음엔 슈거로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삶을.
P.69-70
이곳 태양엔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다. 태양이 날마다 다른 색깔로 빛난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찰리마저도. 우리는 서로 다른 색깔의 워터멜론을 한껏 잘 키운다. 그건 이렇게 이루어진다. 회색 날에 딴 회색 워터멜론에서 씨를 모아 회색 요일에 심으면 회색 워터멜론이 더 많이 만들어지는 거다. 
P.112
잊힌 작품 아주 멀리까지 들어가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찰리가 말한, 그곳에 관한 책을 썼다는 그 사람 외에는. 그 사람의 고민거리는 무엇이었을까. 거기 들어가서 몇 주일을 보내다니. 잊힌 작품은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자꾸 이어질 뿐이다. 그러면 상상이 갈 것이다. 그곳은 크다. 우리보다 훨씬 크다. 
제1부 워터멜론 슈거에서
워터멜론 슈거에서 / 마거릿 / 나의 이름 / 프레드 / 찰리의 아이디어 / 일몰 / 점잖은 귀뚜라미 / 다리 점등 / 아이디아뜨 / 호랑이들 / 아이디아뜨에서 더 이어진 대화 / 아주 많은 굿 나이트 / 식물 / 다시 마거릿 / 폴린의 오두막 / 사랑 한차례, 바람 한차례 / 다시 호랑이들 / 산수 / 그녀는 그러했다 / 동트기 전 희뿌연 빛 속 양 한 마리 / 워터멜론 태양 / 손 / 다시, 다시 마거릿 / 딸기 / 학교 선생 / 합판 압착기 아래 / 점심 전까지 / 무덤 / 원로 송어
 
제2부 인보일
아홉 가지 물건 / 다시, 다시, 다시 마거릿 / 낮잠 / 위스키 / 다시 위스키 / 큰 싸움 / 시간 / 종 / 폴린 / 잊힌 작품 / 쓰레기들과의 대화 / 그 안에서 / 잊힌 작품의 주인 / 돌아오는 길 / 무언가 일어날 것이다 / 소문 / 다시 돌아오는 길 / 그날 밤의 저녁 식사 / 다시 폴린 / 얼굴 / 오두막 / 등불을 든 여인 / 닭 / 베이컨 / 전주곡 / 언쟁 / 송어 부화장 / 인보일의 아이디아뜨 / 손수레 / 행렬 / 야생 히아신스 /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마거릿 / 오두막 열熱
 
제3부 마거릿
일 / 미트로프 / 애플파이 / 문학 / 길 / 거울 동상 / 다시 원로 송어 / 프레드를 찾아가다 / 다시 바람 / 마거릿의 오빠 / 다시, 다시 바람 / 목걸이 / 긴 의자 / 내일 / 당근 / 마거릿의 방 / 벽돌 / 나의 방 / 다시, 등불을 든 여인 /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마거릿 / 좋은 햄 / 일출 / 방패 / 빛 밝은 아침 / 무덤조 / 춤 / 함께 요리하기 / 악기를 연주하고
 
역자 후기
작품 해설
작가이미지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 (Richard Brautigan)

1935년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에서 태어나 오리건 주 유진에서 자랐다. 1957년 비트 작가들의 본거지인 샌프란시스코로 거주지를 옮겼고, 그들과 함께 미국의 반문화 운동을 주도하며 1960년대 초반까지 세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 미국인의 삶에 대한 세심한 통찰로 전미 젊은이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그는, 1967년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특이한 형태의 소설을 출간해 전 세계 문단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젊은이들은 이 소설에 담겨 있는 강렬한 반체제 정신, 기계주의와 물질주의 비판, 목가적 꿈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허무감 등에 매료되어, 마치 성서처럼 이 책을 늘 들고 다녔다고 한다. 『미국의 송어낚시』가 미국의 진보주의와 생태주의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달에 다녀온 미국의 우주인들은 자신들이 최초로 지구에 가져온 운석에 '미국의 송어낚시 쇼티'라는 이름을 붙여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보관했고, 한 포크록 그룹은 '미국의 송어낚시'라고 그룹 이름을 짓는 등 브라우티건의 소설은 한 세대의 정신을 움직일 정도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워터멜론 슈가에서』는 그가 196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앞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동화적 은유와 시적 표현들로 대중들에게 또 다른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임신중절: 역사적 로망스』(1971), 『호킨스 괴물: 고딕 웨스턴』(1974), 『바빌론 꿈꾸기 : 탐정소설』(1977), 『바람이 다 날려버린 건 아냐』(1982) 등을 출간하며 미국 문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84년, 브라우티건은 마흔아홉 살의 나이에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신은 그의 행방을 찾던 출판사에서 고용한 사립탐정에 의해 발견되었고 결국 정확한 사망 날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미국 문학의 전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거장
리처드 브라우티건 대표작 전면 개정!
시인 최승자의 번역으로 만나는 20세기 고전
1995년 국내에 첫 소개되어 삼십 년 가까이 사랑받은 소설 《워터멜론 슈거에서》가 리처드 브라우티건 타계 40주년을 맞아 2024년 새로운 장정으로 독자를 찾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장욱, 김애란, 천명관, 박솔뫼, 양안다에 이르기까지 유수의 작가에게 사랑받는 ‘작가들의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대표작이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원전의 은유적 표현과 시적 리듬을 충실히 살리면서도 오늘날 표기법과 언어 감각에 맞게 일부 단어와 문장을 다듬었다. 또한 《미국의 송어낚시》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도쿄 몬태나 특급열차》 등 작가의 기존 작품과도 통일성 있게 단장해 ‘리처드 브라우티건 걸작선’의 완성도를 높였다.
 
소설은 세상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풍요의 낙원 ‘워터멜론 슈거’를 배경으로 마을 주민 사이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을 그린다. <뉴욕타임스 북리뷰>와 <타임스>로부터 “감히 압축할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와 우아한 매력을 자아낸다” “읽는 이를 매혹하는 독창적인 작품, 대단히 우화적인 방식으로 눈앞의 현실을 이야기한다”라는 찬사를 받으며 20세기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어판 출간 당시 시인 최승자가 미국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해 직접 번역까지 맡은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소설가 이전에 시인으로 먼저 데뷔한 브라우티건 특유의 수사적 문체와 시인 최승자의 언어가 만나 마술적인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하여 《워터멜론 슈거에서》는 그의 문체가 훨씬 더 시詩 쪽으로 기울어지고, 그가 그리는 이야기는 차라리 전설이나 신화의 모습으로 두둥실 떠오른다. 그리고 거기서 작가는 자연과 문명,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 현실과 신화가 단절되면서 동시에 이어져 있는, 혹은 서로 오버랩되는 어렴풋한 박명 지대를 건드리고 있다.” _ 최승자
 
“상상이 가? 붉고 노랗고 까맣고 푸른 워터멜론이.
그것으로 우리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 어떤 꿈이든 꿀 수 있어.”
오직 풍요만이 허락된 낙원 ‘아이디아뜨’에서의 나날
요일마다 다른 빛깔의 태양이 뜨는 ‘워터멜론 슈거’ 마을. 이곳에는 일곱 가지 햇살을 먹고 자라는 일곱 가지 색 워터멜론이 있다. 사람들은 워터멜론 즙을 끓여 얻은 슈거로 원하는 물건을 만든다. 널빤지, 창문, 오두막, 다리, 드레스……. 마을엔 시종 달콤한 냄새가 휘돌고, 사람들은 주어진 풍요를 만끽한다.
 
마을 내 ‘아이디아뜨iDEATH’라고 불리는 곳은 주변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지역이다. 통나무 오두막 구역과 시내 등 곳곳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기 위해, 춤을 추기 위해 모이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주민인 인보일이 지금의 ‘아이디아뜨’는 다 가짜라며 ‘아이디아뜨’와 멀리 떨어진 ‘잊힌 작품’에서 살겠노라 선언한다. ‘잊힌 작품’은 버려지고 잊힌 물건만 가득 쌓인 공간으로, 마을 주민 대부분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인보일을 따라나서는 이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잊힌 작품’에서 터를 잡고 생활하던 인보일 일당이 마을로 들이닥치고, 진짜 ‘아이디아뜨’를 보여주겠다는 인보일 일당과 ‘아이디아뜨’는 이미 여기에 있다는 이들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데…….
 
“너희는 아이디아뜨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하나도 몰라. 너희는 모두 가면무도회를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아이디아뜨를 다시 데려올 거야. 우리가 아이디아뜨를 다시 데려올 거야. 여기 있는 내 일당과 내가. 오랜 세월 생각해온 거고 이제 우리가 그걸 해낼 거야. 아이디아뜨는 다시 올 거야.”
 
이상과 현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환상의 신기루
시대를 초월하는 영감의 원천 《워터멜론 슈거에서》
“1950년대 비트 운동과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을 잇는 가교”라는 평가와 함께 ‘60년대 반문화 운동의 구루’로 불리는 리처드 브라우티건. 예술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비트 운동이 1960년대에 이르러 사회, 정치, 문화의 영역으로 확산하던 시기, 그는 비트 세대의 정신을 계승하는 한편 ‘뉴 픽션’ 운동의 대표 주자로 등극하며 시대를 강타했다. 1967년 《미국의 송어낚시》를 발표한 이후 대학생들이 그의 책을 성서처럼 늘 들고 다녔다는 일화 역시 유명하다.
 
《미국의 송어낚시》와 함께 작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워터멜론 슈거에서》는 “앞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풍자적인 기법” 대신 부조리한 이미지를 앞세워 이상과 현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설탕으로 만들어진 세계’로 나타나는 완벽한 이상향이 대표적이다. 필요한 모든 것이 충족되는 낙원 안에서도 인물들은 다툼에 휘말리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며 유한한 삶을 산다.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인 ‘아이디아뜨’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i’와 ‘DEATH’ 혹은 ‘idea’와 ‘DEATH’의 합성어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어떤 조합으로든 반드시 ‘죽음DEATH’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관념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는 브라우티건만의 독특한 언어는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한다. 이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워터멜론 슈거’라는 상징적 언어는 오늘날 노스탤지어와 여름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이는 것은 물론, 동명의 노래로 만들어지며 시대와 분야의 경계를 넘어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오감을 자극하는 예술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고 있는 소설 《워터멜론 슈거에서》. 브라우티건 표 달곰쌉쌀한 환상 세계로의 여행을 마친 뒤에는 저마다의 ‘아이디아뜨’를 그리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 발견되는 허무와 죽음을 극복하고 문명의 몰락에 대한 위기 의식을 극복하는 데도 역시 예술의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워터멜론 슈거에서》의 ‘아이디아뜨’ 역시 죽음 너머에 있는 상상력의 비밀 요소 같은 것이 아닐까.” _ 리처드 브라우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