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019,
카트린 드뇌브, 쥘리엣 비노슈, 이선 호크 주연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 이르는 8년간의 기록
“내가 경험한 이런저런 일을 내 나름대로 재미있어하며 썼다.
영화감독이란, 영화 찍기란 힘들지만 재미있는 일이구나, 하고
조금이라도 생각해준다면 좋겠다.”
_고레에다 히로카즈(프롤로그에서)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의 시작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는 도쿄 시부야의 파르코 극장에서 연극 무대에 올릴 생각으로 준비한 이야깃감이었다. 첫 제목은 ‘이렇게 비 오는 날에’. 인생 말년을 맞이한 노년의 여배우 이야기로, 마지막 상연 날 무대 전후의 분장실이 배경이었다. 배우가 “이렇게 비 오는 날에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으려나……” 하고 중얼거리는 대사에서 제목도 비롯되었다. 그가 상연하는 작품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테마는 동성 간의 우정. 평소 친구가 없던 배우는 무대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 그런데 여느 때 같으면 무대의 막이 오르고 일주일 후쯤이면 연기 조언을 담은 팬레터가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어쩐지 마지막까지 편지가 오지 않는다. 상연이 끝난 뒤 분장실, 배우에게 물품보관소 직원의 아내라는 한 노부인이 찾아온다. 사실은 그간 배우의 팬인 노부인이 무대를 본 뒤 남편에게 대필을 부탁해 편지를 보냈는데, 이번 상연이 시작되기 전날 남편이 고인이 되었다는 사연을 전한다. 그리고 여기서 여자들 간의 우정이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노년의 여배우는 와카오 아야코 씨, 물품보관소 직원의 아내는 지금은 고인이 된 기키 기린 씨를 염두에 두었었다. 그로부터 십오 년이 흘러 시나리오는 제목도 배경도 테마도 캐스트도 모두 바뀌어 새로 태어나게 되었다.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그 과정의 기록이다. 연극 <이렇게 비오는 날에>가 카트린 드뇌브, 쥘리에트 비노슈, 이선 호크 주연의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태어나기까지.
“딱히 작품을 통해 실험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내 영화가 지니는, 내 영화가 지닌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레에다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건 내가 나고 자란 나라와 모국어인 일본어에서 벗어나도 남는 건가?
그런 물음을 가슴에 품고 착수한 것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고 <브로커>였다.
두 작품 모두 본 사람들이 서로 상반되는 감상을 말했다.
엔드 크레디트를 보지 않았다면 고레에다 씨 작품인 줄 몰랐을 것이라는 의견과,
어디를 어떻게 봐도 고레에다 씨 영화였다는 의견.”
_고레에다 히로카즈(작가 후기에서)
영화 스토리보드, 직접 찍은 스케치 사진, 촬영 일기, 섭외 편지…
세계가 사랑하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에 대해 생각한 것 A-Z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고레에다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린다. 그것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환상의 빛><아무도 모른다><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상실 후 남겨진 자들의 삶을 담는 지점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어느 가족><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브로커> 등 우연히 조합된 가족의 구원을 그리는 과정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고 자란 나라와 일본어라는 모국어에서 비롯되는 맛일까.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스태프와 함께 빚어낸 팀컬러일까.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해외 프로젝트이다. 다음 <브로커>가 한국 배우 주연의 한국 올로케이션이라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프랑스/미국 배우 주연의 프랑스 올로케이션이다.
영화를 끌어갈 주연배우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각각 만나 인터뷰를 통해 세부사항을 조율하고, 주요 무대가 될 파리의 집을 찾고, 그리고 그림의 조합 및 목소리의 균형을 고려하여 조연을 캐스팅하고 이 모든 구성을 바탕으로 대사의 길이 등 시나리오를 보정하고……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에 대해 생각한 모든 것이 오롯이 담겨 있다.
잔뜩 설렌 채 마주한 프랑스의 대배우 카트린 드뇌브와의 인터뷰, 대본 리딩 후 이선 호크에게 보내는 손편지, 촬영중 새해를 맞이하며 스태프 전원에게 보낸 연하장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세심하고 다정하다. 꼼꼼히 현장 스케치 사진을 찍고, 스토리보드를 직접 그리는가 하면, 세트가 될 집에 머물며 장소에 맞게 대사의 길이를 조정하고, 배우의 해석을 경청하여 장면을 수정하고, 틈틈이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영화를 배우고 인간을 연구하는 등 고레에다는 성실하고 열정적이다.
또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작업뿐만 아니라, 베네치아 영화제, 요코하마 영화제, 산체스 영화제, 칸 영화제 등 세계 곳곳의 영화제를 찾아 <세 번째 살인><어느 가족> 등의 작품 관련 업무를 속행하는 이야기, 최고의 전우이자 존경하는 배우 기키 기린 씨의 병환 소식에 어쩔 줄 몰라 하며 프랑스 일정을 멈추고 잠시 도쿄로 돌아가 편지를 전한 일화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현장 안팎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어느 가족>(일본 원제: 좀도둑 가족) 이후, 고레에다 감독이 야심차게 준비한 첫 해외 프로젝트로,
화려한 캐스팅, 프랑스 올로케이션 등의 키워드로 주목받은 작품.
전설적인 여배우 파비안느(카트린 드뇌브)가 회고록을 발간하게 됨에 따라
오랜만에 딸 뤼미르(쥘리에트 비노슈)와 사위 행크(이선 호크),
어린 손녀 샤를로트가 파비안느의 집을 찾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모녀의 반가운 재회도 잠시, 엄마의 회고록을 읽은 뤼미르는 책 속 내용이 거짓으로 가득 차 있음을 확인하고, 엄마를 향해 일침을 날린다.
“엄마, 이 책에 진실이라고는 없네요.”
나쁜 엄마, 나쁜 부인, 나쁜 친구이더라도 좋은 여배우의 삶만을 추구해온 파비안느와
그러한 삶의 태도를 지닌 엄마의 딸로서 시린 상처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보낸 뤼미르 사이의 오해와 갈등, 질투, 화해 등을 담고 있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의 촬영일지와 일상 단상을 적은 글에, 2023년에 쓴 프롤로그와 작가 후기를 붙여, 가장 최근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생각을 담은 책이 완성되었다. 한국에서 촬영한 <브로커>에 대한 소회, 최근작 <괴물>에 대한 기대 등 고레에다는 늘 그렇듯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날그날의 생각을 적었다. 그러는 중에 불쑥불쑥 배우, 영화 들의 숱한 고유명사가 등장하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350여 개의 짧은 각주를 붙여두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우주를 항해하는 내내 사랑과 즐거움만이 수반하기를 기대한다.
해외 서펑
영화는 누군가를 가해하는 동시에 늘 누군가를 구제한다. 무엇보다 심고 깊은 구제는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졌다. 고레에다 씨는 언제는 자신의 힘(권력도 포함해)이 지니는 가해성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다시 생각하고, 되묻기를 계속하는 듯하다. 누구보다 섬세하게 작품과 그것에 관련된 사람들을 몹시 정중하게 받들고자 한다. 현장에 있을 때 감독은 소년 같다. 누구보다 설레는 게 전해진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하다. _ 하시모토 아이(배우)
<어느 가족>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모든 촬영을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세계적 거장의 눈은 현장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할까. 현장감 넘치는 촬영일지, 편지, 스토리보드 등 귀중한 자료를 꽉꽉 눌러담은 책이다. 연이어 벌어지는 현장 트러블과 문화 충격에 감독은 대개 유머러스하지만 때때로 분노를 내뱉기도 한다. <오징어게임> 같은 현실이랄까. _ <분게이슌주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