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이웃
악의를 감싸 안으며 선의를 탐구하는 작가 허지웅이 전하는 함께 살기 위한 가치들
#에세이
최소한의 이웃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저자
  • 2022년 08월 22일
  • 308쪽135X205mm김영사
  • 978-89-349-4240-5 03810
최소한의 이웃
최소한의 이웃 허지웅 산문집 저자 허지웅 2022.08.22
 
악의를 감싸 안으며 선의를 탐구하는 작가
허지웅이 전하는 함께 살기 위한 가치들
적의와 호의, 소음과 평정, 변해야 할 것과 변치 말아야 할 것을 떠올리다 보면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망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는 작가 허지웅이 오롯이 혼자 힘으로 버터야 했던 청년 시절과, 그렇게 혼자 힘으로 자리를 잡자마자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을 겪고 회복하면서 끝내 놓지 않은 질문이기도 하다. 팬데믹이 휘몰아치고 정치가 혼돈에 빠지고 지구촌 한편에서 전쟁이 일상이 된 요즘 더 자주 곱씹는 물음에 작가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별 방도가 없다”고 답한다.
《최소한의 이웃》은 “이웃을 향한 분노와 불신을 거두고 나 또한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분투기다. “타인을 염려하고 배려하는 마음” “이미 벌어진 일에 속박되지 않고 감당할 줄 아는 담대함” “평정심을 유지하는 노력”이 있다면 분노는 잦아들 것이고 분란이 분쟁으로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하며, 캄캄한 곳에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존중을 표한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며 다투는 현실이지만, 결국 서로 돕고 기대어 살 때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이야기. 무례하고 무책임하고 무감각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이지만, “최소한의 염치”를 가지고 인간답게 살자는 이야기. 이런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깨우칠 수 있다.
'책 속에서'는 준비 중입니다.

작가의 말

 

1애정두 사람의 삶만큼 넓어지는 일

2상식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3공존이웃의 자격

4반추가야 할 길이 아니라 지나온 길에 지혜가

5성찰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고단함

6사유주저앉았을 때는 생각을 합니다

 
 
작가이미지
저자 허지웅
《필름2.0》과 《프리미어》《GQ》에서 기자로 일했다.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 《나의 친애하는 적》 《살고 싶다는 농담》, 소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60~80년대 한국 공포영화를 다룬 《망령의 기억》을 썼다.
망하지 않고 살기 위하여
우리는 최소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줄 전능한 힘 같은 건 없지만, 
적어도 비참하게 만들지 않을 힘 정도는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_본문에서

차별과 혐오, 적의와 호의, 사랑과 모멸, 소음과 평정, 너와 나, 변해야 할 것과 변치 않아야 할 것을 고민하다 보면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망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지금 이 시대가 당장 머리를 맞대고 숙론해야 할 묵직한 화두다. 위로를 넘어 대책을 간구해야 오래 버티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이웃》은 “코로나19의 살풍경이 사작될 때”부터 “거리두기가 중단될 때”까지 글쓰는 노동자 허지웅이 보고 듣고 읽고 만난 세상에서 기인했다.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 벽은 더 높아졌고 두꺼워졌습니다. 평정이 사라진 자리에는 조급함과 피해의식이 빼곡하게 자라났습니다. 남 탓으로 가득한 공기에서 희망을 찾기란 요원”해보인다고 말하며, “이웃을 향한 분노와 불신을 거두고 나 또한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책을 펴냅니다”라고 밝힌다.

“우리는 이웃과 화해할 수 있을까요.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이웃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을까요. 이웃의 등급을 나누고 자격을 따질 시간에 서로 돕는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더불어 살아간다는 일의 고단함을 체념이 아닌 용기와 지혜로 끌어안을 수 있을까요. 그런 의문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첫 번째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_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한량처럼 팔짱을 끼고 우리 공동체의 불행을 관람하지 않는다. 막장으로 들어가는 광부처럼 비애 안쪽으로 들어가 근원을 파헤친다. 어두운 곳을 목도하고 나와서 석탄 한 조각을 손에 들고 이것이 차가운 땅에 온기를 불어넣을 최소한의 것이다, 라고 말하는 노동자 같다. 그는 글쓰는 노동자로서 우리를 함께 살기 위한 석탄 한 조각 같은 가치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최소한의 애정, 공조, 상식, 반추, 성찰, 사유다. 궁극에는 “우리가 서로에게 최소한의 이웃일 때 서로 돕고 함께 기다리며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강골 있는 언어로 들려준다.

나의 일을 감당하고 남의 일을 염려하며
마음의 평정에 이르기까지
《최소한의 이웃》은 총 여섯 개로 부로 나뉘어 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지금 여기에 사는 공동체의 ‘이웃’이다.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말하자면 나와 너의 이야기다. 

1부는 “두 사람의 삶만큼 넓어지는 일”을 그려본다. 가족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한 남자가 20년 만에 가족을 되찾기까진 “자식을 찾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가족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 “이제 곧 세상을 떠날 아들이 혼자 남을 아버지”를 위해 비디오 리모컨 사용법을 써내려가는 마음에는 염려와 아량이 깃들어 있다는 것. 
작가는 주변인들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면서 “나눌 줄 모르는 둘보다 나눌 줄 아는 하나가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되짚으며 한 가지 통찰에 이른다. “내가 쓰는 건 글이지만 결국 상대하는 건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마음이 문장 곳곳에 스며 있어서인지, 작가의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어두운 마음이 밝아지고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다. 

2부는 “이웃의 자격”을 묻는다. “남의 가족 문제에 참견하는 게 될까 봐” 아동학대에 침묵하는 것이 옳은가. 장애인이 “격리되고 분리되어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가. 따돌림 문화에서 나는 “완전히 결백한 사람”인가. 타인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데 선을 넘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가.
우리가 서로의 안녕을 빌며 살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선악의 구분 짓거나 “이타적인 사람이 되라는 게” 아니라 아픈 사람의 상처를 지나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며 이웃의 자격이라고 말한다. 
“이웃을 돕는 일이 손해나 오해를 낳지 않는다는 걸 사회가 약속해줄 수 있다면 마음뿐 아니라 행동 또한 그처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는 남에게 무조건 베풀라는 강요가 아닌 서로가 최소한 지켜야 할 기본과 약속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3부는 사회적 주제를 다루며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상식을 이야기한다. 러시즘에서 갑질 사건, 어린이집 교사의 죽음, 체육계 학교폭력, 의전 공화국 문제, 구급대원 폭행 문제, 비혼모 문제, 음주운전 사고까지 원칙과 상식이 기울어지거나 침몰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고찰한다.
작가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책과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최소한의 염치와 고마움을 느끼는 세상”이 밑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게 아닌 “이웃을 향한 배려만이 환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제시하면서 “불의한 죽음에 무각감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은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뜨거운 긴장감과 침착한 문장으로 시사적 시선을 드러내는 작가의 필력을 느낄 수 있다.

최소한 함께 살기 위한 가치에 대한 상념은 4부 “가야할 길이 아니라 지나온 길에 지혜”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역사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영속적 지배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조선 시대 광화군의 이야기에서 80년 광주, 고대 문명에서 중국 6.4항쟁까지. 역사의 흐름에서 현재를 바라보며, 지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소신을 보여준다. 
“시대의 비극으로부터 일어나 회복으로 이끄는 힘은 세련되고 거창한 말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과격한 우격다짐에서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거창하고 과격한 것들에 휩쓸리지 않는 평정과 극단의 열기를 경계하는 온화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위기 또한 같은 방법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5부와 6부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하는 “성찰”과 “사유”의 기록을 모았다. 그는 ‘소라게’에서 인생의 한 수를 배운 경험을 풀어놓는데, 소라게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확한 크기의 집을 알고 있습니다. 집을 옮겼다가도 필요한 것보다 크면 원래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우리 또한 “자신이 건사할 수 있는 욕심의 크기를 알고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 서로의 욕심을 부정하지 않고 서로 돕는 방식으로 아무도 실패하고 뒤처지는 동료 없이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은가 되묻는다. 
이런 사유는 톨스토이의 책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의 교훈과 이어지는데, “충분히 만족하고 평안을 찾을 수 있는 행운이 눈앞에 있음에도 기회를 망치는 건, 언제나 조금 더 크고 많은 걸 갖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턱을 괴고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는 지독하리만큼 철저하게 스스로를 돌아본다. 스스로가 떳떳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잘못을 저질러놓고 반성하지 않았는지.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사로잡히지는 않았는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과몰입하지 않았는지 집요하게 자신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타인의 잣대에 휘둘려 내 가치를 바닥에 두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진정한 강인함이란 하늘을 날고 쇠를 구부리는 게 아닌, 역경에 굴하지 않고 삶을 끝까지 살아내며 마침내 스스로를 증명하는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악의를 감싸 안으며 선의를 탐구하며
최소한의 이웃이 되겠다는 태도
우리 공동체를 오래 바라보고 내면을 가다듬어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눈물을 쏟지 않는다. 어떻게든 버티고 감싸 안으며 평정을 회복하려고 안간힘 쓰는 한 사람의 분투가 스며 있다. 그렇다고 하염없이 관용을 베풀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조직적인 학교폭력과 반복적인 운전운전에 대해서는 감경이 아닌 “무관용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철저히 원칙의 각을 세우면서,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남을 이해하는 태도, 그게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의 전모”라고 이야기한다.

최소한의 이웃이란 “구제될 사람의 자격을 가리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능력 중 하나인 “공감하는 능력”을 적재적소에 쓰는 사람, “최소한의 염치”와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논하지 말라.” 즉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며 다투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작가는 책 속에서 ‘아시타비’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분노와 분열을 막는 지침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공격하고 혐오하기보다 내가 생각하는 옳음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옳음을 경청하는 것. 그런 이후 서로의 견해를 모으고 차이를 좁혀나가는 것. 오직 그 순간 시대의 상식이 결정되고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빛이 없는 곳에서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래서 우리가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조용히 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일은 숭고합니다. 사실 대개의 중요한 일이란 그렇게 조용하고 겸허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문장은 가히 아름답고 겸손하여 마음에 파동을 일으킨다. 그의 글이 슬기롭다면 이런 깊은 마음 덕분이다.

“세상은 결코 선한 것과 악한 것 혹은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 명쾌하게 나뉘어지지 않는다. 그 사에는 반드시 회색지대가 존재하며, 입장과 관점에 따라 판단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례함과 비겁함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정직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하며, 그런 행동들이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바꾸어내는 놀라운 일”을 실현하게 만든다.

그는 정중히 부탁한다. “우리 같이 삽시다”라고. 그의 부탁이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평온하게 만들고 우리 내면을 평정으로 이끌 수 있는 말이길 바란다. “이제는 압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는 흔한 말의 무게와 깊이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힘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생각합니다. 더 이상 끌어모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아 주저앉고 싶었으나 안간힘을 다해 다시 일어나 밥벌이에 나서고, 마침내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었던 누군가가 진심을 다해 그 힘과 운을 타인에게 빌어주고자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